낚시에 관한한 문외한인 내가 어느 날 밤 졸지에 낚시광들에게 붙들려 저수지에 당도한 것은 거의 자정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낚시질을 당한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심심하고 졸리고 피곤했지만, 그들은 고기가 잘 물어주지 않는데도 오로지 찌를 바라보고 그것의 변화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텐트 안에서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던 내가 슬그머니 그들 곁에 갔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체통에 헝겊만 두른 것 같은 무뚝뚝한 이 남자들에게서 참으로 섬세한 일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가방 안에는 이름 모를 도구들이 즐비하였고、정성들여 깻묵을 반죽하는가 하면, 각종 조미료와 양념, 그리고 버너까지 잘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내게 짧은 사제생활 중에 가장 기뻤던 때를 묻는다면, 나는 선뜻 고백성사를 줄때였다고 말할 것이다. 특히, 아주 오랫동안 냉담했던 교우들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돌아올 때면, 그보다 더 부끄러운 흠 많은 사제를 하느님께서 이렇게 은총주시고 붙들어 주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을 죄인으로 깊이 느꼈고 변화와 희망 안에서 새로 시작하는 신앙인이 하느님과 다시 상봉하는 장면에서, 나는 은총의 실재를 느끼고, 아울러 레지오 단원들과 신자들이 바친 무수한기도의 효력을 확인하는 은혜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지만 고백성사는 아쉬움 없는 하느님께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생생한 현장이었고, 내 성소를 감사드리는 기도하는 장소였으며, 죄인들을 하느님의 섬리에 의탁하고 보속하는 은밀한 기쁨의 장소였다.
가을 판공을 위해 여러 산골공소를 돌아다니면서「사람 낚는 어부」로 붙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성실하고 신심 깊은 참회자의 고백 앞에 부끄러워 몸둘바를 모르면서도, 그럴수록 치유와 구원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위안으로 내 자신을 변명하고 애써 힘을 낸다. 소박하고 아주 열심한 산골 공수에서, 나는 문득 낚시꾼들만도 못한 채있는 내 자신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상투적인 훈계, 쉽게 피곤을 느끼고, 성의 없는 보속을 주는 따위들도 그 중에 하나이다. 변화와 성숙을 진정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판공성사의 계절에 이제 나부터 부끄러움을 씻지 않을 수 없다 죄가 많은 곳에 더 많은 은총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말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