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국 뉴욕 한인천주교회 소속 한국인 신자 데레사 M씨가 81년부터 성모님께서 6명의 젊은이들에게 발현하신다는 유고슬라비아「메주고예」를 방문한 후 본사로 보내온 체험기이다. <펀집자註>
유고슬라비아에 있는 「메주고예」(Medjugorje)라는 촌락에서 1981년부터 성모님께서 6명의 아이들에게 나타나시어 메시지를 주신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런데 지난 5월 어느날 아침 NBC 6시 뉴스에 방영된 후 부쩍 가고싶은 마음이 들어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드디어 6월 23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유고슬라비아에 도착하니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언어의 장벽과 불안감을 피할 수 없었으나 성모님을 뵈러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공항에 도착하니「메주고예」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호텔로 가는 그룹과 촌락으로 가는 그룹이 있었는데 나는 호텔이 예약되어 있었으나 그 쪽을 포기하고 교회 가까운 촌락으로 가는 그룹에 끼었다. 거기에는 암으로 고생하여 뼈만 남은 8순형님을 동반한 페루 신부님, 판사 부부, 작곡하는 31세의 아리따운 아가씨,경찰관으로 평생을 지낸 홀아비, 칠하는 인부(人夫)가 있었다.
한 집에 숙소를 정하고 더위를 씻고자 하는데 누군가가『오늘밤 11시까지 「크레제박」(Krezevac)산정(山頂) 십자가가 모셔져 잇는 곳으로 오라』고 했다. 성모님께서 아이들에게 말씀하셨다고 4천 2백 피이트의 돌산을 올라갔다. 14처가 모셔져 있는 산을 3시간동안 돌과 싸우며 올라 드디어 산정에 이르렀다.
그 곳에는 몇층집만큼 높고 큰 십자가가 집채만한 축대 위에 모셔져 있었다. 이 십자가는 1933년 촌민들이 시멘트와 모래, 물들을 날라다 만든 것으로, 촌락 밖에서도 어디서나 볼 수 있게, 그리고 볼 때마다 신앙을 다짐하고자 모두 힘을 합하여 세웠다고 한다. 그냥 올라가기에도 너무나 힘든 험한 돌산에 어찌 이렇게 이루었는지.
성모님 목격자들을 보려고 축대 위에 올라가 찬송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죽은 가족의 사진인지 그 앞에 초를 켜고 기도드리는 안타까운 모습도 있고-.
그 높은 산정이 5천여명으로 덮이고 발디딘 곳 역시 평지 아닌 돌 위라 불안전한 자세로 모두 기도드리는데 드디어 5명의 목격자들이 도착하여 모두 합심하여 묵주기도를 드렸다. 하늘에는 순시(巡視) 헬리콥터가 계속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11시15분까지는, 붉은 불ㆍ푸른 불을 번갈아 켜면서 왔다갔다하는 헬리콥터가 조용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묵주기도가 끝날 무렵 별안간 목격자들이 꿇어엎드렸고 옆에 계시던 신부님께서 십자가 축대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빨리 내려와 모두 무릎을 꿇으라고 하시고 사진을 찍지 말라고 외치셨다. 모두 무릎을 꿇는 순간 그 거대한 십자가 전체가 번갯불같이 강한 빛을 발하며 여기 저기서 말씀이 나오고 각국어의 번역이 나올적 마다 십자가 전체에 옆으로된 글시가 나타나며 동시에 표현키 어려운 전신의 감동을 느꼈다.
마치 번개에 감전되는 것 같은 평화함을 느꼈다. 여기저기 남녀를 막론하고 울음이 물결쳤다. 나의 기억으로는 여덟번 말씀이 나오고 번역이 각나라말로 나왔다.말씀의 내용인즉『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먼저 가족과 이웃과 모든 교우를 사랑하라. 기승을 부리는 사탄을 이기기위해 하루에 3~4시간씩 기도하라. 일.일하고 일에만 시간을 쓰지말고 기도하라. 여기 온 너희들은 가서 두루 나의 말을 전하라 혼자서보다도 둘이상 모여서 기도하라. 기도하는 곳에 평화가 있고 평화가 있는 곳에 구원이 이 있으리라. 사탄의 힘을 막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다. 쉬지말고 기도하라. 하루의 6분의 1인 4시간동안 기도하라. 아침에 한시간. 저녁에 한시간, 낮에도 도중에 이어서 기도하라. 그리하면 사탄이 범치 못할것이다. 너희들에게 축복한다-』.
늦게까지 모두 산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놀라웁고 기쁜 평화가 마음에 넘치었다. 새벽 2시 캄캄한 어둠속에 돌덩이리뿐인 산을 내려오는데 70세이상 노인도 있었으나 한사람도 다친이가 없었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 시끄럽던 헬리콥터가 어쩌면 그렇게 까맣게 잊을 정도로 없어졌다가 우리가 모두 산을 내려올 때 다시 나타났는지 신기해했다.
다음날은 성모님꼐서 이곳에 처음 발현하신 1981년 6월 25일의 6주년 되는 날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아침 일찍부터 뜨거운 태양아래 교회 밖에서도, 교회 안에서 계속되는 미사에 마음 합하여 수만명이 각나라 말로 묵주기도를 드렸다. 그 넓은 교회벽 주위에는 각나라 팻말을 써붙인 옆에 신부님이 의자에 앉아 계시고 사람들은 줄을 섰다가 한명씩 마주보고 고해성사를 보았다. 헝가리어 서반아어 이태리어 영어 독어 페루어 등의 팻말은 있어도 우리 한국어는 물론 없었다.「한국어」라고 쓰여진 팻말이 붙을날이 올것인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한 숙소에 다행히도 페루말을 하시는 신부님이 계셔서 페루어로 미사드리는 7명정도의 그룹에 끼여 성당옆 자그마한 준비실 같은 데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성모님께서 맨처음 양치는 이들에게 언덕 위에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이 방에 나타나셨다 한다. 그 후엔 성당에, 지금은 사제관에 매일같이 나타나시어 목격자에게 말씀하신다 한다.
미사가 끝난후 숙소에 가서 땀먼지를 씻고 무엇인가 좀 먹고 다시 성당에 가서 계속되는 미사에 참석했다.성당엔 못 들어가고 마당에서-. 5시15분, 성모님 말씀에 따라 목격자들이 오는 것을 보고서 밀리고 밀치고야 단인 인파중에 나도 끼어있었다. 옛날에 예수님을 뵙고자 나무 위에 올라가 자캐오처럼 나무 위에 올라가있는 사람, 그 옛날 모였던 군중을 방불케 하는 까만 보자기를 쓴 늙은 아낙들…각나라 각색의 특유한 모습들이었으나 손에 든 묵주와, 그 마음과 입들은 똑같이 십자가를 찬양하고 있었으리라.
5시쯤에 드디어 목격자가 사제관으로 들어가자 밖에서도 더욱더 열심히 묵주기도를 드렸다.
돌연 누가『저 나무 위를 보라』하여 그 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구름보다는 투명하고 보라색같은 어른한 기체가 저쪽 나무위에 있더니 어느덧 좀더 가까운 이쪽 나무위에, 또한 사제관 바로 앞 나무위에 나타났다. 그때 누군가가『태양을 보라』하기에 태양을 보니 우리나라 천주교 2백주년때처럼 태양이 용솟음치며 돌고 있는 주위에 각색 찬란한 묵주가 나타났다. 모두 다 이때처럼 열심히 기도드리면 안 이루어질 일이 없으리라.
신앙은 상식을 초월하여 모두 다 태양을 똑바로 눈뜬 채로 보며 오랜 시간 기도를 드렸다. 나중에는 지붕 위의 십자가 주위에 금색 영광이 동그랗게 나타나며 하늘 위에 붉은색 십자가가 양편에 누운 형태로 나타났다. 지금도 눈감고 그 때 그 시간을 생각해 본다. 나 죽어 육신이 없어져도 내 영혼이 못 잊을 그 시간이다.다음날 같은 방에 묵었던 작곡가 아가씨는 성모님 오시는 자그마한 사제관 앞에 서있으면 3~4명은 때때로 그속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TV카메라를 들고 3시부터 그 앞에 서 있었다. 성모님의 뜻으로 뽑힘을 받는다고 모두들 그 앞에 발도 뗄수 없을 정도로 밀고 밀리며 야단들이었다.
드디어 이날도 5시가 좀 지나니 목격자들이 오고 웬일인지 그 작곡가 아가씨가 들어가게 되는 것을 보고 너무도 놀랐다. 내가 보기에는 별로 신앙심이 없어보였다. 이것은 남을 비판하는 나의 못된 교만일지는 몰라도 그 아가씨는 여기오는 비용도 누가 내주어서 왔다 하고 예수님을 놓고 십자가상에 못박혀 올라가 매달리신 가슴 아픔을 농담으로 모두를 웃기려하고 소리내어 웃을 때는 정말 눈물이 나게 슬펐고 주님께 죄송 죄송했다.
이 여자가 들어가니 너무도 놀라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성모님의 뜻으로 뽑혀들어간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 들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 여자를 잘못 본 것이었다. 주님께서 보시는 눈은 우리 인간과는 다르다고 하였다. 참 그런가보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그 여자는 호기심으로 온 듯하였다. 남들이 산에 고행하며 성모님께서 오라 하시어 올라갔을 때 저 여자는 호텔로 가서 잤다. 남들이 교회로 갈 때 수영도 가고 성당에 갈 때 무릎 위 훨씬 위까지 올라가는 짧은 바지에, 하는 말은 더 기막혔다. 수십만 군중 속에 이런 옷차림은 그 여자뿐이었다. 여러가지 아무리 좋게 해석해보려해도 아니되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뽑혀 들어가는 것이었다. 특히 들어가면서 몇 안되는 계단을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군중 쪽을 보고 환히 웃었다. 손에 든 것이 무겁지만 않았으면 손도 흔들었을성 싶었다. 기가 막혔다. 들어가고 싶어 애쓰시는 老 신부님들도 계셨다. 멀리서 바라보면서 부러웠다.
그런데 뜻밖에도 나를 지적해주시는 것이었다. 바라지도 못했던 일이라 강사의 눈물부터 나왔다. 여기 성모님발현하실 때 그앞에 알수 없는 죄인었다. 정신없이 그 안에 들어가보니 자그마한 도서실 같은 응접실에 목격자들(4명)과 신부님 5~6명 그리고 내 기억으로는 老부인 , 그 아가씨, 어느 남자분나 이렇게 였던것 같다.
모두 마음 모아 묵주기도를 드리는데 별안간 목격자들이 무릎을 꿇고 한곳을 주시했다. 나는 이때 모든 것을 빼놓지 않고 기도하였다. 마음에 표현키 어려운 평화가 꽉 찼다. 목격자들리 성모님께 무엇이라 말씀을 드리는데 알아듣지 못하였다. 성모님 가실 때는 일제히 뭐라고들 똑 같은 말들을 했다.
그 아가씨는 TV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와서 바로 기계를 밧데리로 조정해서 곧 사진이 나왔는데 이것이 웬일일까? 성모님 발현하신 그 방을 그렇게도 섬세히 찍었건만 하나도 안 나온 것이다. 이 아가씨는 비명 가까운 소리로 한다는 말이『내가 여기 뽑혀 들어온 증거가 하나도 없게 됐네』였다.
이것이 이 여인의 첫마디였다. 이 사실에 나는 많은 교훈을 받았다. 아무말도 나오질 못하였다. 마음이 따뜻하고 열심인 인부(人夫) 아저씨는 나보고 말하였다.『이 일로써 저 여인이 변할 것』이라고. 그렇다면 나는 왜 불러주셨는가. 내가 신앙이 깊어서? 천만에. 번쩍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나 혼자만이 동양서 온 여인이기에 『너는 가서 말하고 써서 두루 알리라』하고 나를 불러주신 것이다. 산 위에서도 말씀하셨다.『여기 온 너희는 가서 전하라』고.
그래서 돌아온 날부터 아니 오던 비행기 속에서부터 옆자리 청년에게 말하였더니 너무도 기쁘게 들으며 그는 묵주를 꺼내『성모님 발현하셨을 때에 있었으니 그 손을 이 묵주에 대어 달라』며 자기는 신학생이니 좋은 신부되게 기도해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이 놀라운「메주고예」에 오신 성모님 이야기를 전한다. 누가 뭐라해도 성모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기에 나는 오늘두, 또 내일도 말씀을 전할 것이다. 주님 나를 주관하소서 아멘.
추신:앞으로 가시는 분들을 위해서 ①절대적으로 성당 가까운 곳에 민박할 것. 호텔들은 너무 멀어서 차로 2시간 정도 가야 됨.
②전기용품은 유럽 어댑터로도 안됨. 면도기도 안됨
③마른 건빵이나 먹을 것을 넉넉히 준비할 것.
④운동화를 꼭 가져가고 세제를 가져갈 것
⑤작은 여행사를 이용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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