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지금 노동쟁의로 떠들썩하다. 노사간의 팽팽한 대결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해결되고 협상이 깨어지고 다시 이루어지고 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급기야는 대우조선 선각소조립부 소속의 李錫圭(21)씨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슬픈 일이다.
한 젊은 노동자의 죽음을 부른 전국의 노사분규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민주노조설립, 인간다운 대접 등등을 요구하고 있고, 이런 요구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전국민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이제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흘린 땀과 빼앗긴 잠과 가족과의 길고 짧은 억지 헤어짐에 걸맞는 보상을 안겨 주어야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과 인내를 그들에게만 강요할 수 없음을 우리는 모두 깨닫고있다.
그런데 몇몇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내세우고 있는 요구사항 가운데 새삼스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이른바 머리모양 자율화가 그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머리털의 길고 짧음이 뭐 그리 대단한일이기에 깎아야 한다느니 못깎겠다느니 하며 신경을 곤두세우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으나,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중고등학생들의 머리 모양이 강제 삭발을 면한 것도 불과 몇해전의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이것도 엄격한 의미에서는 머리 모양 자율화가 아니다. 죄수 같은 까까중 신세를 겨우 면한 정도이다. 그렇다면 군대는 물론이고 학교 심지어 일반 회사 등 일정한 조직체의 관리자들은 어째서 조직구성원의 머리모양에 간섭하려드는가?
개인적 경험을 되살려 보는것도 좋을 것 같다. 필자는 장교로 군대생활을 했는데, 제대가 가까운 무렵에는 일주일에 세시간씩 일반대학에 출강을 나갈 수 있었다. 처음 강의실에 들어가 교단에 섰을 때 겪었던 당황과 불안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것은 학생들이 모두 나의 통제 밖에 있어서 나의 말이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을것만 같은 기묘한 무력감과 당혹감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지각색의 복장에 길고 짧은 제멋대로의 머리 모양이 눈에 거슬렸다. 삼년밖에 안되는 기간이었지만 어느새 규격화된 모양과 반응에 익숙해있던 나의 눈과 마음에 개성적인 학생들의 옷차림과 머리모양은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것」으로, 무질서와 혼란으로, 불온한 것으로 비쳤던 것이다. 또한 장교에게 있어 사병은 지시와 거느림의 대상이지만 선생에게 있어 학생은 지시와 거느림의 대상이 결코 아니었다. 대화와 토론의 상대요 동반자였다. 톨이켜보면 이러한 새로운 창조적 관계를 받아들여야 하는 심리적 부담이 그 때의 불안감과 무력감을 더욱 부채질했던 것 같다. 현재의 노동쟁의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우리 마음갈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심리적 부담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런 부담을 호도하기위해 우리는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살아 뜀뛰는 참질서를 무질서와 혼란의 선동이라고 몰아 붙임으로써 자신의 자의적인 통제와 관리아래 틀어잡아 죽음의 질서로 대치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한 나라의 으뜸 하인인 대통령을 비롯해서 각급 관공서 병원, 회사, 학교, 장당 등의 각종 조직책임자와 관리자들이 조직구성원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쯤으로 여기는 정신적 불구자일 때 그 조직에서는 언제고서슬푸른 단발령이 갖가지 형태로 고개를 들게 된다.
그것은 강요된 체조시간, 제복착용, 특정색깔로 구분된 신분증, 강요된 극기훈련의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일정한 경우의 용공 맟 좌경시비와 불순분자해고 또 위장취업 금지법 등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 나라의 국민이나 한 회사의 노동자는 힘센 지도자나 돈많은 자본가의 지도와 통제를 받아 마땅한 잠재적 불순분자나 어리석은 부하가 결코 아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자율적인 인간으로서 나라와 회사 살림을 더불어 함께 가꾸는 동반자요 협력자이다. 그래서 국정은 국민의 감찰을 받아야하고 기업은 공개되어야하는 것이다. 미국 대법원의 유명한 판결문의 한구절이 인상적으로 밝힌 것처럼 국민이 정부를 감시하고 심판할 권한이 있는것이지 정부가 국민을 감독ㆍ감시할 권한을 가진것이 아니다.
노동쟁의가 유발하는 현재의 혼란과 시끄러움은 하나의 창의창조적 진통이다.
국제경쟁력약화니 경제위기니 한국상품계약 취소사태니 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워 이 출산의 아픔을 어물쩍 마취시키려하지 말자. 이런 이유들은 일면적 타장성이 분명히 있는것이지만 다시 한번 냉철히 따져보면 그것들은 『남에게 혐오감을 주니 머리를 자르라』는 식의 이유,즉 원래의 깊은 심리적 동기와는 다른 편리한 이유만큼이나 비본질적인 것들이다.
지금 겪는 이 진통없이는 자율적 인간들이 이루는 참생명의 인간관계라는 아이는 태어나지 못한다. 필자의 청년장교시절 경험이 말해주듯이 이아이의 탄생이 요구하는 새로운 창조적 인간관계는 물론 큰심리적 부담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 부담이 벅차다고 또 싫다고 이 아이를 유산시켜서는 안된다.
우리의 내면에 고질화되어있는 정신질환 즉 자율적 인간이 이루는 일견 혼란스러워 보이는 생명의 질서 공포증을 치유할 손길은 이 아이의 연약한 새손길 밖에 없다. 새아이를 유산시키고 싶은 충동, 새아이에게 제복을 입히고 머리를 깎아버리고 싶어하는 병든 마음은 하루속히 치유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변갑선 신부ㆍ이주경 교수ㆍ이흥록 변호사 정양모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김영무 교수(서울대ㆍ영문학과) 김동억 신부(대전교구 당진본당주임) 최창섭 교수(서강대ㆍ신문방송학과) 서석구변 호사 順으로 집필을 해주시겠음니다.
◇44년 경기도출생
◇서울대 문리대졸업
◇뉴욕주립大서 영문학박사
◇現 서울大 인문대 영문과교수 청담동본당 선교분과위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