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리아 여사는 금년 70세로 고희(古稀)를 넘긴 할머니시다. 그는 43년전에 수원 고등동본당의 모(母)본당인 수원본당에서 영세입교하였는데 하느님께서 특별이 초상장례에 봉사하는 은총을 내리신 것으로 보여진다.
영세입교한 직후, 마침 어려운 집에 초상이 나서 도와주지 않으면 안될 사정이어서 그집 시체를 거두어주고 다른 사람과 같이 염습을 해본것이 시초가 되었는데 처음 남의 시체에 손을 댔을때에도 전혀 혐오감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었다고 한다.
임여사가 세례받을 당시만해도 고풍이 역역한때라 나이 27의 젊은 안여자요 양가집 젊은 며느리로서 남의 초상에 시체를 다룬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고 상식밖의 일이었다. 이 일을 시작한후부터 상가에 빈번히 출입하게되고 자원하여 염습입관에 봉사하게되니 차차 소문이 나고 임여사가 시신을 정성껏 다룬다고하여 초청하는 사례가 잦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일어났다. 집안 웃어른들의 강경한 반대에 부딛쳤으니 즉 양가집 젊은 부녀자가 내 집안일도 아닌 남의 집 초상에 매장군 노릇을 하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부군 유재근씨의 아량과 협조가 없었던들 더욱 곤난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 여사는 이 일을 결코 중단하지 않았다.
얼마후 두번째 시련에 부딪쳤다. 자녀들이 성장함에 따라 어머니가 하시는 일에 불만을 표시하고 나섰으니 이때에는 참으로 난처하였다. 자녀들의 반대를 무마하고 가급적 마찰을 피하고자 때로는 친척 친지를 방문한다고 위장하고 초상집으로 달려가곤 하였다. 그러나 속이는 것도 몇번이지 영리한 막내딸에겐 효과가 없었다.
상가에 봉사하고 오기만하면, 어김없이 엄마 몸 속에서 초상집 냄새가 난다고 정확히 알아내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임마리아 여사는 이같은 어렵고 위대한 봉사와 희생을 하면서도 극히 겸손하고 자기 자랑을 하는 일이 없다. 어느 회갑장소에서 누군가 『임여사께서는 거의 일평생 상가에 봉사하셨는데 임여사의 손을 거쳐간 시신이 모두 몇구나 되겠습니까』라고 물으니까, 임여사는 매우 망설이다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약 40년간 해왔으니까 600구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하였다.
임여사는 이것에 거치지 않고, 망인의 수의(壽衣) 제작에 뛰어난 솜씨를 지니고있는데, 국민의 의(衣)생활이 양복 양장에 쏠려서 한복재봉을 등한시하는 이때에 까다로운 수의제작에 누가 유의하리요… 그렇다고 망인의 염습을 양복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임여사는 매년 1ㆍ2차씩 수의제작전시회를 열어서 후배에게 수의제작을 전승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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