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동생 요한이가 대학재학중 입대하여 훈련소와 군의학교를 졸업하면서 위생병으로 부대에 배치되기 전에 특박을 나왔다가 내게 들렀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보좌신부 생활을 하면서 극도의 건강악화로 1주일간 입원했었고 퇴원해서도 쉬엄쉬엄 일하던 터였다.
고된 훈련과 교육을 마치고 찾아온 동생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형님, 저 고백성사 보겠어요』라고 말했다. 친남동생이니 굳이 성당의 고백소로 갈 것 없이 그방에서 주면 됐을텐데 융통성도 없이, 성당까지 가야하나 하는 귀찮은 생각에 나는 『고백성사는 무슨 고백성사니? 나 피곤한데 그만둬라』고 말했다. 동생은 아무 대꾸도 않고 몇마디 더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갔다.
다음 다음날 나는 요한의 신변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귀대하던 날 아직 서행하는 열차에서 뛰어내리다가 넘어지면서 하필이면 머리가 돌에 부딪혀 사망했다는 비보였다.
부산 종착역에 내리면 헌병들에게 곤욕을 치뤄야하는 신병신세여서 조금 미리 내리려 했던듯하다. 나는 할 말을 잊을 정도로 충격을 받고 비탄에 잠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애가 내게 고백성사를 청했다가 거절을 당했으니 성사보려던 죄를 지닌채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요한은 주일학교 선생이며 모교 레지오 마리애 단장직을 맡았고 우리 여러 형제중에서도 유난히 신심이 두터워서 열심히 잘살려구 노력했으니 대죄는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천국에는 아무리 작은 죄라도 사함받지 못했으면 반드시 연옥을 거쳐야 한다는데, 그럼 요한의 영혼은 어떻게 됐을가? 거치지 않아도 되었을 연옥의 혹독한 고통을 나 때문에 겪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미쳤을때 내 마음은 가책으로 견딜 수 없었다.
며칠후 요한을 위한 연미사 때는 그를 아끼는 친지들로 큰 성당이 꽉찼었는데 영성체 때 보니 울고있는 동료들도 눈에 띄었다.
미사를 마치고 내방에 돌아왔을때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나는 요한에게이듯 독백을 했다. 『요한아, 정말 미안하다. 네가 혹시 연옥의 고통을 겪게됐다면 그건 순전히 이 못난 형 신부 때문이구나. 네게 속죄하는 뜻으로 죽을 때까지 사제생활 열심히 하도록 노력할께. 약속하마』
그뒤 가끔 상심되고 좌절될때면, 힘을 내라는 요한의 따뜻한 격려를 느끼곤 한다. 그는 지금도 내게 순간을 최선하는 사제상(像)을 조용히 타이르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