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잊혀지지않는 섬이 하나 있다. 섬 둘레의 바다는 언제나 푸르고 수온이 연중 화씨 70도를 내려가는 일이 없다. 소금기 가득한 바다 바람 속에 햇살이 마구 쏟아졌다. 야자나무 잎새가 설렁설렁 흔들리는 산호초로 된 작은 섬이다.
청명한 오후 아무도 없는 텅빈 호텔의 바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편지를 썼다. 천장에는 선풍기가 느리게 돌고 카운터 안쪽에서 흑인 바텐더가 저무는 수평선을 보며 유리잔을 닦고 있었고 활주로처럼 넓은 해변을 비치 파라솔을 접어든 노부부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쫓기는 인간들
조용한 잔디가 깔린 가로수 밑벤치에서 영구 휴가족이 늙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일찌기 태양을 쫓아 다니는 선구자였기에 지금 상하의 땅에 쉬는 목표를 달성했을 것이다. 바람에 날리듯 바에 들어선 한 여인이 하이힐을 벗어들고 맨발로 카운터 곁에가서 앉았다. 선글라스를 낀 호리호리한 남자가 파라다이스 홀로 가자고 했다. 불과 10리길이라 했다.
TV에선 아버지와의 성적인 관계를 책으로 엮어 최근에 유명해진 처녀가 자신의 체험은 패륜이나 배덕이 아니라 문화라고 강변하고 있었다.
『동감이야』여자가 남자에게 고개짓하며 속삭였다.
『무엇이…』남자는 아무 감동없이 대꾸했다.
『문화 ?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이 동감이야』
『문화가 어떻게 되었다고?』
『아무것도 아니야』
TV에는 바다가 빛나고 있었다. 내가 잊지못하는 섬, 아름다운 자연, 그 속에 추악한 인간의 지혜가 언제나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급격한 변화 속에 있으며 시대 조류는 결코 희망적인 방향으로 흐르려고 하지않는다. 우리는 인류가 생존하는 지구사회의 문화를 공유하고 세계의 주장이 모든 인간사회에서 공통화된 지금 제 아무리 다종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여도 문명의 위기적 양상은 깊어만가고 경제 불황과 시민생활, 교육의 장의 황폐, 이념의 쇠실과 불신, 핵무기의 발달 앞에 인간은 쫓기고 있으며 컴퓨터의 비정 앞에 쩔쩔매고 있다.
◆부부상이 바뀌고 있다
현대는 분명히 격변의 시대요, 혁명의 시대이다. 스웨덴의 어느 신문에 이런 기사가 있었다. 어떤 회사가 사원 모집에 「천사를 구함」이라는 광고를 내었는데 격노한 여성 사무원들이 이것을 차별이라고 비난했다.하지만 회사는 『바보같은 소리,천사에 성별이 있는가』라는 반론이었다. 스웨덴은 양친을 위한 출산육아 휴가가 1974년에 처음 적용되었고 출산 직후 10일간의 휴가를 취한 아버지가 50%를 넘는다고 한다. 요즘 국내신문에서 『부부상이 바뀌고 있다』는 기사가 연재되고 있으며 간통, 혼인빙자 간음죄 등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가족제도의 일대 변혁이 아닐수 없다.
시험관 아기의 문제는 또 어떠한가. 부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정자를 빌어온다면 이는 간통이 아니겠는가.이것이 용납된다면 새로운 윤리체계를 정립해야 할 것이다. 시험관 아기공장에서 대량생산한다면 이것은 사육이 아니겠는가. 패륜과 배덕을 문화의 양상으로 본다면 원시로의 복귀이전에 도덕률은 없어지고 무법천지가 될 것이다. 가정파괴범을 엄히 다스리는 기사를 보지만 기존의 윤리체계는 무너지고 핵가족과 더불어 노인은 설 자리를 잃었고 충효정신을 아무리 외쳐도 노인은 버려지고있다.
남녀 두사람의 결합 즉 혼인은 『네』한 마디가 성립시킨다. 혼인은 약속이며 계약으로 믿음에서 이룩되고 믿음밖에서는 불가능해진다. 그럼으로 영원한 기초공동체인 가정은 믿음에서 성립된 것이다. 금수도 기르면 정이 가는데 미추나 능력으로 혼인을 하거나 돈으로 지위로 혼인을 한다면 이것은 거래일 것이다. 믿음으로 성립된 가정에는 사랑이 따른다. 공산주의가 왜 두렵나. 사람을 격리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믿음은 서로를 규정하고 서로를 요구한다. 사랑의 원리에는 순간과 그 분립을 초월하여 전체를 찾는 희망의 원리도 함께 하고있다. 가정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주님의 성체를 받드는 가톨릭인은 제마다 성체를 나누기 때문에 가정은 성스러운 곳이다. 성가정에는 참사랑이 있다. 그릇된 자부심은 참사랑이 아니다. 참사랑은 자유롭고 평범하며 진리를 실천하는데 있다.
◆믿음 기초위에 가정이
사람들이 긍정을 잊었다고 한다. 협동이 어려워지고 인내를 하지못한다. 모두가 투사가 되고 영웅이 되기를 바라는 공명심으로 병들었다. 자기 본분은 망각하고 남의 일에 열을 않고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 자리에서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에서 자녀는 자녀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해야할 것이다. 인간의 지혜는 하느님의 능력이다. 세상의 결말은 하느님의 권능에 달려있다. 우리는 자신에게 맡겨진 것의 관리자로서 책임을 다할뿐이다.
국경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고, 그래서 시공의 흐름을 헤쳐온 우린 인간에게는 꿈이 있다. 이 뜨거운 꿈이 미래를 결정해줄 것이다.
■지금까지 집필해주신 황상근신부 김윤주씨 정달 용신부 남궁연 교수께 감사드립니다.이번호부터는 권오택 교수 이완영 수녀(성가수녀회 총장)노동두씨 (서울백제병원장)이갑수 주교(부산교구장) 順으로 집필해주시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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