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48차 국제펜대회의 주제는「작가의 상상력과 국가의 상상력」이었다. 1월 13일부터 일주일동안「뉴욕」에서 열려 마침 방학중이고 국제회의에 참석할 기회를 바라던 터이라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다녀왔다.
알려진만큼 알려진, 뉴욕의 첫 인상은 휴지가 난무하고 낙서가 요란한 거리와 횡단금지의 신호를 마구 어기는 집단의 거주지역이었다. 교통순경 한명 눈에 띄지않는 거리. 첫날밤을 지낸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우리 대표들은「모리츠 호텔」대회본부에 등록을 하고 몇가지 유인물과 네임카드를 받았다. 밖에 나오니 유명한「쎈츄럴 파크」가 바로 맞은 편. 우리나라에서도 소개된 영화「러브 스토리」에 등장된 곳이다. 관광용 마차가 다섯대 질서있게 서 있었다. 이른 봄날같은 아침 산뜻한 공기를 맘껏 마셨다. 세계의 도시「뉴욕」에 펼쳐있는 이 아름다운 공원.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산책길은 별세계에 다시 들어온 느낌이었다. 말을 타고 순시하는 두명의 경찰관이 눈인사를 주며 지나친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내외도 만나고 간편한 복색으로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도 몇몇을 지나친다. 문득 벤치에서 졸면서 앉아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한 두어주일을 이곳에 머물면서 나는 어떤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될 것인가?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상상의 깃을 한껏 퍼덕였다.
그날 오후 뉴욕 시립도서관에서 개회식을 갖기로 되어 있었다. 먼저 온 세계의 저명한 작가들이 이미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시간은 다가오는데 정문은 굳게 닫고 한쪽 문만을 열고 한 사람씩 엄격하게 검사(?)를 거쳐 들어가고 있었다. 일일이 체크하는 것은 초대장 네임카드 등이었다. 입구쪽까지 가는 도중 청년들이 유인물을 나누어 주었다. <슐츠와 펜>이라는 제목이었다.
슐츠와 개막연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었다. 드디어 도서관의 열람실 한 의자에 앉아서 국제모임의 한 멤버가 되어 술츠가 연설하기 위해 일어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장과 연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고성의 야유가 터져나왔을 때 나는 순간 긴장했다. 사복경찰이라도 달려와서 그들을 퇴장시키는 무슨 소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했지만 그건 잘못된 상상력이었을뿐. 그대로 연설은 진행되고 있었다. 아니 술츠 자신 조금도 동요되거나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자신에 대한 관심에 자부심을 느끼노라고 천연스레 응수해가며 연설을 마침으로써 갈채를 받았다.
또한 펜본부의 노만 메일러도 미ㆍ소 양진영에 대해 화살을 겨냥하면서 소란을 피우는 그들에게 자신이 준비한 연설문이 긴데 시간만 더 소요될 뿐이라고 한마디 던지는 걸 잊지 않았다. 각국의 대표단을 위해 따로 자리에 명패를 달아놓지도 않았으며 개회식장에서부터 할말이 있으면 다 해보라는 뱃장(?)이 엿보였다.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 엉키다보면 서로 몸이 부딪게 되기 마련인데 그때마다『미안하다』를 아주 상냥하게 해주는 이 사람들.
일주일동안 회의장소에서 만나는 그들은 친절히 몸에 배어서 따로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몸집이 크고 늘 내려다보는 자세로 잘 웃어주고 큼직한 가방을 두세개 메고 다니며 큰 걸음을 성큼성큼 떼어 놓고 논리가 정확한 말을 확실하게 하는 서구인들을 실컷 볼 수 있었다.
작가들의 논문발표가 일단 끝나고 나면 질의자들의 반대의견 내지는 확인하는 질문이 나오는데 으레껏 대여섯명의 질의자들이 객석에서 일어나 줄을 서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중공작가에게 질문이 많았는데 그 내용은 중공에서는 작가의 활동이 얼마나 자유로우냐? 등등이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K박사 곁에 앉기만하면 그분은 내용을 요약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회의진행을 이해하는데 큰도움이 되었다. 귀찮아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평소의 그에 대한 상이상의 면모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밤에는 혼자 외출하지 않아야 한다든가, 특히 뉴욕사람이 아닌 몸차림, 즉 여행자와 같은 행색은 위험을 자초한다는 바람에 겁을 낸건 사실이었다.
택시를 타면 운전석과 객석 사이엔 방탄 유리창막이가 되어있었고, 엘리베이터에 흑인남자가 혼자있으면 절대 타지를 않았다.
김치생각이 나지 않을까한 것은 잘못된 상상이어서 간날 저녁부터 한국 음식점에 들러서 서울의 여느 음식점과 같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대회를 마치고 1955년에 세운「디즈닐랜드」를 보게되었을때 작가의 상상력은 제몫을 다하려 드디어 퍼득이며 날아갈 수가 있었다.
인형들의 합창ㆍ밀림지대를 유람하고, 드디어 피터팬의 꿈을 안고 동화의 세계로 날아들었을 때 나는 부러움 때문에 환성마저 잊은채 아아, 미국이 아니고는 해낼 수가 없을 꿈의 나라, 상상의 나라를 맘껏 즐길 수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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