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이 미사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안드레아, 세실리아, 나무와 풀들 그리고 우리의 머리속에까지 촉촉히 적셔주는 뿌연 그름과 사정없이 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봉헌합니다』
산은 말을 싫어한다. 깊은 침묵… 침묵은 하느님의 소리라 했던가 ? 그렇다. 산은 듣게만 한다. 하느님의 소리를 듣게만 한다. 그리고 알아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고 말한다.
쓰러진 고사목과 구름과 바람을 통해서 혹은 산사람과 나누는 격려와 인사를 통해서 그분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천왕봉에서의 미사!
그것은 어쩌면 그분이 우리에게 미리 준비한 축제였던것 같다. 우리들 대부분이 한번도 디뎌보지 못한 지리산 꼭대기 천왕봉! 『조그마한 제대자리나 푸른 잔디쯤은 있겠지』라고 상상했었는데 그곳에는 미리 마련된 제대로, 심지어 풀 한포기도 흙 한줌도 없었다. 그저 좁기만 하고 메마르고 단단하고 사람의 심장을 얼릴 정도로 차가운 바위들만 우리를 경이롭고 소외당하게 했다. 아래를 내려다 봤을때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해줄 대자연은 안개와 구름에 가려있고 부는 바람에 맞서 우리는 모두 주저앉아 넋을 잃었다. 그러나 잠시후 서로의 넉넉한 웃음을 나눴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바람등살에 신부님은 제의를 제대로 입을 수가 없어 야윈 등으로 바름을 막고 앉으셨다. 우리는 모두 제대위에 켜야 할 촛불을 머리속에 켜놓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소리없이 멈을 떠시는 사제를 바라보며 미사를 드렸다.
금반에 담긴 하얀 성체를 모시며 우리들 각자는 그동안 힘들고 아팠던 기억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우리를 여기까지 이끄신 그분께 감사와 찬미의 선물을 드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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