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럼을 깨고 오곡밥을 먹는 대보를 날이었던 지난 2월 23일 오후 2시.
신설본당으로 이른바「아파트 본당」인 서울『본당신자들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성신자들은 힘을 모아 의자들 치우고 윷판을 만들었으며 주부신자들은 성당사무실에 이미 김치며 안주거리까지 정성껏 마련해놓고 윷판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 나와라, 도!』
『도 아니면 뭐든지 나와라!』
윷을 모아쥔 신자의 표정은 기원하는 모습이었고, 마치 소리로 방해공작 (?) 을 펴려는 듯 상대팀 신자들은 입을 모아 그가 원하지 않는대로 윷가락이 놓일 것을 소망했다.
힘찬 구령과 함께 준비된 윷판에 떨어진 윷가락은「걸」ㆍ세개의 말을 업고 있는 말판은 판을 한바퀴 돌아가지않으면 안되게 되고 말았다.
탄성과 비탄이 동시에 터지면서 격려와 기쁨의 박수도 어우러졌다.
윷판을 중심으로 둘러선 신자들의 얼굴은 열기로 발갗게 물들어 있었고, 주부신자들은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준비한 음료와 안주거리를 연신 권하고 있었다.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속에서 신앙이 아니면 얼굴조차 익히지 못했을 타인들이 한마음으로 음식을 나누고 웃으며 서로의 살림살이를 걱정하던 이 시간, 서울 지역에서는 줄잡아 20여개의 본당들이「척사대회」를 열었다.
백미 1가마를 우승 상품으로 내놓은 본당이 있는가 하면 자모회에서 솜씨를 낸 음식으로 본당 마당에 하루 장터를 세운 본당도 있었고 청년회 신자들의 전자 음악솜씨가 색다르게 흥을 돋군 본당도 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대보름맞이 척사대회를 열고 있는 본당들이 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날로 대형화하는 도시본당이 공동체다운 체험을 밧보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신앙공동체가 살아있는「우리」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인 듯하다.
핵가족화와 산업화의 물결은 아름다운 우리고유의 공동늘이를 앗아가지만, 콩한쪽도 나누어먹던 선조들의 생활을 신앙으로 되살리는 일은 어렵지만은 않은가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