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국민학교 5학년때 첫 영성체를 하고 18세에 견진성사까지 받았으나 15년 가량 냉담을 했습니다.
성당에 가고 싶었으나 시집이 불교집안이라 완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특히 시어머니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전에는, 예수는 믿지 못한다』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느님의 도움이신지 캐나다의 시동생이 시어머니를 초청해 시어머니는 캐나다에 가셨습니다.
저는 그 길로 성당에가 성모상 앞에 섰습니다.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후 미사에 참례하면서 교리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여전히 성당에 못가게 했습니다.
그러는 한편 아빠는 아이들과 제가 당신 몰래 성당에 가면 어느새 알고 성당에까지 쫓아와서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술때문이었습니다.
5년전 아빠는 술 때문에 직장까지 그만두게 되었으니 사람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완전 페인이었습니다. 술로 세월을 보냈던 것입니다. 제가 벌지 않을수 없어 파출부 일을 했습니다.
그후 아빠는 헌금한다는 구실로 돈을 요구했습니다. 아빠는 술이 취해가지고도 성당에는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영세까지 하게 괬습니다. 영세하는 날도 역시 술은 마셨습니다.
그러나 저와 딸은 영세식날 많이 울었습니다. 「이제는 아빠도 주님의 자녀가 되었구나」하고 생각하니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영세후에도 아빠는 술을 계속 마셨습니다. 돈이 없으니까 집안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되다 들고 나갔습니다. 연탄, 쌀, 그릇…나중에는 성모상, 성가집, 아이들 학용품까지 들고 나가 술을 마셨습니다.
일을 갔다오면 집안은 온통 쓰레기장 같았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너무 속이 상해 십자가의 주님을 보면서 원망도 해보고 애원도 하면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청량리에 계시는 안경렬 신부님을 찾아갔습니다.
안신부님께서는 상계통「고마움의 집」의 모신부님을 소개해주셨습니다.
특히 안 신부님은 저희 가정을 꼭 기억해주시며 그 바쁜 와중에도 관심을 쏟아 주셨습니다. 너무 고마워 눈
물이 나왔습니다. 안 신부님을 대할 때 마치 인자하신 안 신부님을 대하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안 신부님께서 항상 걱정하시는 가운데 아빠는 상계동「고마움의 집」에서 한달보름동안 기거하게 됐습니다.
그후 그렇게 술을 마시던 사람이 술을 끊었습니다. 85년 1월부터 현재까지 한방울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또 취직을 해 직장에 다닌지 8개월이나 됐습니다.
그런후 우리집안에는 하느님의 은총이 계속돼 그렇게 열성적으로 반대만 하시던 시어머님이『나도 성당에 가야겠다』며 열심히 교리를 배우시더니 영세를 하셨습니다. 지난해 12월의 일입니다.
저의 집을 아는 모든 이들은 너무나 놀랍나다. 저도 이 놀라운 은총들을 혼자 어쩌지 못해 졸필을 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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