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고물택시를 탄적이있다. 안팎으로 상처가 많고 녹슨 곳도 많았으며 의자도 푹꺼지는 그런 차였다. 덜그덩 덜그덩 소리를 내며 달리는 택시안에서 나는 이 한마디를 내뱉지않고는 못배겼다. 『아저씨, 이 차 참 클라식하네요』기사아저씨는 얼른 내말을 못알아들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한참만에『으 흐 흐』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국인 의사의 가정에 초대를 받아갔는데 집대문에 커다란 글씨로『이 집안에서는 금연입니다』라는 쪽지가 붙어있었다. 애연가인 나는 그집에서 있었던 세시간동안 그야말로 바늘방석에 앉아있다가 나왔다. 그 집은 삼층으로된 꽤나 큰저택으로서 일층과 이층은 대학생들에게 하숙을 놓고있었는데 금연조항은 하숙생들이 지켜야할 제 1호 규칙이었다. 내가 그집 화장실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것은 이틀전에 하숙생이 몰래 방안에서 담배를 피운것이 냄새로 사후발각되어 그 다음날로 당장 쫓겨났다는 얘기를 안주인에게서 미리 들었기 때문이다.
방문을 마치고 대문을나오면서『휴-이제는 살았구나』하고 한숨을 쉬고있던 중 대문앞에 세워놓은 주인용 자동차에 눈이 멈추었을 때 나는 또한번 소름같은 것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이때까지 보아온 차중에서 가장 클라식한 차였기 때문이다. 차체의 대부분이 녹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떨어져나간 부분, 푹 기어들어간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닌 한마디로 똥차(?)였다. 그차가 64년형이었으므로 그당시 벌써 15년이나 늙어있었다. 그런데도 이 미국인은 자기가 직접 수리하면서 잘쓰고 있었다.
지난연말에 받은 그의 새해인사편지에는 아직도「그때의그차」를 몰고 서울~부산의 두 배가 넘는거리를 여행한다고 자랑하였다. 자가용 비행기를 가지고있는 의학박사가 22년된 고물차를 몰고다니는 것이다.
이 미국인 의사에게서 우리는 주체의식을 배울수 있을 것 같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잘 달리기만 하면 외모가 아무리 허술한 고물차라도 당당히 몰고 다니는 주체성, 그리고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 적어도 나의 보금자리에서만은 남이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뚜렷한 주관을 배워야 할 것이다.
영어를 배우러 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어느 노처녀에게『왜 영어를 배우고 싶으냐』고 물었더니『길거리에서 만난 외국인이 길이라도 물어보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영어를 배우는 것은 좋으나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배울 필요는 없다.
한국인이 영어를 몰라서 부끄러워하지않고 한국에서 한국말로 길을 물어보지 못하는 외국인이 부끄러워할때가 올테니까.
지난 연초에 공주에 갔었는데 공주감영의 천주교신자 학살장소였던「황새바위」에 작년에야 겨우 조그마한 기념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곳에서 순교한 이름 모를 신자들이 수천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사료의 발굴과 성지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그곳 조 신부님의 안타까운 말씀이었다. 일인당 수백만원씩 드는 로마-예루살렘 성지순례단이 성업이라는데 그돈으로 우리의 잊혀진 순교성지를 개발하는데 썼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교회의 주체성 확립도 시급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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