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생동하는 교회상의 반영
-서울 대신학교 23회 동창사제들의 미거를 보고
본지 76년 12월 25일자 3면 기사 「일하는 사제상 정립에 앞장」이라는 기사는 뜻있는 분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서울 大神學校 23회 동창의 젊은 신부들이 벌인 장학회 자체의 위대성 때문도 아니고 그 일의 특이성 또는 그들의 열성 때문에 만도 아닌 듯하다. 그들의 이상과 진정에서 나온 공동체 의식이 구체화 되었기에 호응을 얻은 것이다. 그러기에 소위 「수입 공유제」문제만 해도 그 방법적인 문제 지속적인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그 자체에 대해서는 거의 무조건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부의 균등한 분배란 미개발 사회나 발달된 사회나 동일하게 그 실현상의 문제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물질사회의 발달이 정신적 공동의식을 함께 성장시켜 주지 못한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오히려 부유한 사회일수록 인간은 더욱 개인주의화하고 이기주의화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인간이 공동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진실로 협력하는 단계에 이르면 자연히 개인의 껍질을 벗어나 타인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로써 뭔가 함께 하고 싶은 원의가 생긴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나』라는 개인의 껍질을 벗어날 때부터 『우리』라는 공동체적 운명에로의 필연적 성향을 띠게 된다.
젊은 사제들이 개인의 물질적 애착에서 벗어나 공동선에로 눈을 돌이킨다는 것은 그러기에 그만큼 숭고성을 지니고 있다. 지향이 그러하고 협력이 그러하고 더더욱 그들의 정신력이 그러하다.
그것은 곧 초대교회의 생활 정신이 아니겠는가?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도행전 2장 44~45)
현대 교회가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고 있고, 이러한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도 또 우리 이웃 형제의 일이 결코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란 것도 또 초대교회의 생활과 이념에로 돌아가자는 움직임도, 이러한 공동체적 형제의식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 사회생활의 근본 이념이 되어야겠다는 절대적 필요성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미 곳에 따라서는 사제들의 또는 평신자들의 공동생활을 시도하는 곳도 있고, 또 공동사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꾸준히 시도하는 곳도 있다. 그것은 현대 사회의 기업화 분업화 전문화된 각종 분야에 공동 협력을 통해 대처해야겠다는 처세술적 방법이어서는 안 된다. 한 형제임을 깊이 자각하고, 함께 살고파 하고,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인간 본연의 요구에서 출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또 그러한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더구나 기성사회에 물들기 쉬운 젊은 사제들로부터 구체적으로 시도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 교회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우리는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기운과 정신이 모든 사제들, 모든 신자들, 나아가 전 국민, 전 인류의 뿌리깊은 정신 바탕을 이룬다면 이 세상은 지상낙원이 될 것이다.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인류 구원이 하느님의 뜻이었다면 이러한 이상은 극히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때 늦은 군소리에 불과하다. 그만큼 인간은 개인주의에 젖었고 이기주의에 타성이 박혀 버렸나 보다.
초대 교회의 그 열렬하던 신도들의 공동생활을 우리는 모르고 있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이상적 생활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만큼 인간은 시들해지기 쉽고 좋은 뜻이 전달되고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악의 세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방법적인 섬세한 연구와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겠고 이들의 부단한 노력이 선의의 많은 이들로부터 호응을 얻게 되고, 또 그러한 정신을 보급시켜 크리스찬 생활의 이상으로서 공동체적 정신을 키우는 것이 우리 모두의 사명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이 땅에도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알고 「나」보다 「남」을 더욱 믿을 수 있는 풍조를 심어 나가야겠다. 친구의 말을 믿지 않기보다는 차라리 돼지가 날아다니는 것을 믿겠다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논리를 펴야겠다. 초대교회의 종말론적 가치관이 우리 시대의 종말론적 가치관으로 안 될 이유가 없다. 우리 모두가 종말과 시작을 함께 산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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