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말부터 염원해온「2백주년 2백만 신자화」가 목표보다 불과 일년늦은 지난해 연말에 달성됐다.
신자 총수 2백만 돌파는 이승훈 선생의 영세 후 실로 2백년만에 이루어진 결실로서 한국교회사에 있어 새로운 전기 를 마련했다.
「2백주년 2백만신자화」는 레지오 마리애가 지난 79년 7월 전국 각 교구평의회 지도신부 및 단장회의에서 민족복음화 활동 5개년 계획으로 채택, 추진해온 것으로서 계획을 수립하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할때 어떠한 목표든 달성 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사실 레지오 마리애가 「2백주년 2백만 신자화」목표를 설정한 당시(79년말)의 신자 총수는 1백 25만에 조금 못미치는 1백 24만 6천 2백 68명이었다.
따라서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의 해인 1984년에 2백만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5년간(80~84년) 매년 15만명씩 10%의 증가율을 기록해야만 가능한 것인데 70년대 후반 신자증가는 4~5만명선에 불과, 일반적으로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극히 회의적이었었다.
그러나 이 운동이 2백주년 기념준비위원회가 설정한「이웃전교의 해」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한국교회 전체의 운동으로 확산, 비록 목표보다 1년은 늦어졌으나 신자수 2백만 돌파를 앞당겨 성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신자 총수 1백만을 돌파한 것은 지난 74년말로서 1백 90년이 소요된 반면 1백만에서 2백만이 되는데는 불과 11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물론 이같은 현상은 근 1백년 동안의 박해, 개신교의 진출, 일제치하, 남북분단 등의 요인으로 1백만을 돌파하는데 많은 장애요인이 있었으나 1백만에서 2백만으로 올라서는데는 1백만을 기반으로한 자연 증가에 적극적인 선교활동으로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같은 추세로 볼 때 신자수 3백만 돌파는 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에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3백만돌파는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2백만 돌파에 쏟은 열정이 지속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2백만 돌파는 분명히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2백만 안에는 냉담자로 분류된 신자가 19만 9천 5백 80명, 거주 불명신자가 24만 21명이다. 전체신자의 약 22%에 달하는 이 사랑엔 국경이 없다는 말이 있다. 진정한 사람은 어떤 고난과 장애라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각종 재해에 대해 많은 나라들이 앞다투어 사랑의 성금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 2字 가톨릭신문에서 가톨릭계 불우시설 후원회 회원 가운데 약 50%가 비들신자들에 대한 사목방안이 다각적으로 모색돼야 하겠다.
신자수가 증가하고 교세가 신장될수록 교세통계의 중요성 역시 상대적으로 높아가고 있다. 그런데 현행 교구별로 작성하는 교세통계표는 양식의 통일성이 없어 전국차원의 통계를 작성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3백만 돌파를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우선 교세통계작성의 통일성과 항목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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