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사제관에 들어서자마자 짜증스럽게 전화벨이 울린다. 언제부터인가 전화벨은 나에게 긴장과 부담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두려운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여러해 전부터 친분이 있는 C신문사 L차장이 원고청탁을 하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부탁을 거절한다면 또 따른 사람에게 청을 해야만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에 그의 청탁을 받기로 하였다. 그러나 막상 수락하고 나니 후회가 앞선다. 또한 제대한지 6개월 밖에 되지않은 주제에 글을 쓴다는 것이 건방지다는 느낌도 든다.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혼돈에서 질서를 주셨듯이 인간의 삶 역시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결단하고 수락하면서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상념들이 머리를 스친다.
현대는 과학과 기술문명의 혜택으로 우리의 생활이 풍요롭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전화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업에서 개인상담까지 다양한 역할을 해준다.
그런데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전화통화에 예의가 없음을 본다. 대인관계의 원만한 지속을 위해서는 반드시 예의가 필요하다. 전화는 상대방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고, 단지 음성만 오가고 있기에 더욱 예의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언젠가 밤늦도록 강론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수화기를 드는 순간『야!개XX야. 성당에서는 무슨일을 하길래 밤늦게까지 내 부인이 있는거야. 빨리 보내』술이 몹시 취한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말을 하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마치 홍두깨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게 서 있었다. 상대방의 마음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그에게 은근히 화가났다. 몇번의 그런일이 있은후부터 전화벨소리에 공포증을 갖게 되었다.
어느 신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밤마다 음담패설을 내용으로 하는 이상한 전화가 온다고 한다. 물론 직접적인 성관계는 아니지만, 상대방에게 너무나 큰 정신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다.
전화는 유희적이고 시간을 소일하는 수단이 아니라 빠른시간내에 의사전달이나 정보를 교환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칼이 강도에게 있을 때는 살인의 도구로 되지만 수술하는 외과의사의 손에 있을 때에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게 된다. 이렇듯 전화가 전화답게 사용될 때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그날 심기의 변화에 따라 결례를 많이 하였음을 시인한다. 나의 이러한 태도가 상대방에게 불쾌감과 마음의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현대인에게 전화는 상대방 인격을 존중하여 마음의 평화를 나눌 수 있고 대화와 만남의 장이 되었으면하는 바람이다.
※지난호까지는 한국산업은행국제영업부 최광복대리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이번호 부터는 서울 길동본당주임 허근신부님께서 집필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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