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년전 한국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한국인 신도들은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그침없이 고백해왔다. 그들의 신앙고백은 순교의 형식으로 나타났으며 삶의 현장에서도 드러났다. 그들에게 있어서 순교는 삶의 또다른 형태였으며 또한 그것은 삶을 통한 신앙고백의 축적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신앙고백은 복음과 전통문화가 만나는 과정에서 진행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제 순교자의 당을 보내며 우리는 여기에서 복음과 문화전통의 관계를 생각하며, 문화의 복음화를 위한 길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문화는 인간이 진정하고 충만한 인간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연이나 타인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발전시켜온 특수한 방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문화는 한민족의 삶 전체를 포괄한다(푸에불라문헌). 복음화는 이 문화에 내재해 있는 말씀의 씨앗을 성장시키고, 문화의 핵심에 도달하여 사회구조와 환경의 변혁에 기초로 작용할 씨앗을 키우는 일이다. 이 작업을 현대 교회에서는 특히 「문화의 복음화」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임무에 하느님 백성모두가 과감히 매진해야 함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오늘의 교회는 기존의 문화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문화의 존재와 정체를 견고케하도록 파견된 존임을 말한다. 그리하여 문화에 있어서 패권이나 지배권의 행사를 반대하며, 교회가 다른 문화를 약화하거나 흡수·소멸시키는 일을 해서는 아니됨을 역설한다.
이러한 현대교회의 가르침을 전제로하여, 우리는 지난날 순교의 전통에서 드러난 복음과 문화전통과의 관계를 반성해 보아야한다. 우리의 문화전통에 대해 우리신앙의 선조들이 취했던 입장은 대략 세가지로 나뉘어진다. 첫번째는 그들의 신앙이 기존의 문화형태에 매몰된 유형이다. 현세구복적 신앙에만 몰입했던 일부 신도들의 존재에서 우리는 복음과 샤마니즘의 무비판적 혼합현상을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게된다. 또한, 두번째로는 자신의 문화전통을 전면적으로 부정했던 유형이 발견된다. 그들은 복음과 전통문화와의 연결을 스스로 단절시켰고, 복음화와 서구화를 동일시하여, 서구문화 우월주의의 입장에서 전통문화를 서구문화로 대치하고자 했다. 이는 문화적패권주의에 세뇌된 병적현상에 불과했다.
그리고 세번째로는 기존의 문화에 기초하여 복음을 수용하려 했던 신앙고백의 유형이 찾아진다. 이들은 당시의 문화풍토에서 존중받던 효열(孝烈)과 의리 등「아름다운」가치에 기초하여 복음에 대한 신앙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전통적가치를 복음을 통해 새롭게 완성시키려 했다. 이로써 복음은 기존의 문화와 사회구조를 발전·변혁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했다. 그들은 문화의 복음화를 이미 추진해 나갔던것이다.
오늘 우리의 과제는 바로 이 세번째 유형의 전통을 키워나가는데에 있다.
우리교회는 인간성의 완성을 지향하는 한국문화의 전통을 반죽으로 삼아, 그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이 되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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