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4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심한 수준에 맴돌고 있다. 무더기 구속과 처벌 사면복권 도 대량구속 그리고 사면복권이 무슨 수학공식인양 되풀이 된다. 어쩌다가 볕드는가보다 하면 어느새 먹구름이 모여든다. 이런 비민주적인 역사의 악순환은 어디서 오는가. 물론 보는 시각에 다라 민주의 정체와 단절의 원인이 여러갈래일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해방직후의 역사에 촛점으 맞추는 사학자들의 시각이다.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되는 시점에서 일제식민지 유산을 청산, 극복하지 못한 그릇된 역사의 출발을 지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기간은 36년간이었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에 비긴다면 극히 단기간에 불과하지만 철저히 민족성이 파괴된 치욕의 역사였다.
경제적인 수탈만으로 부족했던지 일본은 우리의 언어사용마저 금지했고 마침내 창씨개명까지 강요하여 민족의 존립 그 자체마저 부정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악조건 아래서도 뜻있는 우국지사들은 목숨을 걸고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위해 투쟁하였다. 허나 다른 한편으로 일제의 주구가 되어 자기민족을 탄압하는데 앞장선 부일협력자들이 많았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해방이 되었을때 목전에 당면한 가장 주요한 과제는 어떻게하면 일제식민지잔재를 청산할 것인가에 있었다. 철저히 지배당하기만 한 노예근성, 패배주의적 의식을 극복하고 민족자존의 긍지를 심어주어야 했다.
여기에는 먼저 일제의 도구가 된 친일파들에 대한 처벌이 요구된 것은 당연한 시대적 요청이었다. 그리하여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고 동법에 의하여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반민법」이 공포된 다음날인 1948년 9월 23일 서울운동장에선 친일파인 이종영 대한일보 사장이 국민대회를 열어 「반민법」을 공개적으로 성토한 것을 시발점으로 하여 친일파의 방해공작이 집요하게 시작되었다.
그무렵 「반민법」제정에 앞장선 소장 국회의원들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탄로났다.
즉 이른바 「반민특위」소속 국회의원 3명을 38선 부근까지 강제로 끌고 가서 그 자리에서 살해해버리고서는 나중에 발표할때는 월북을 기도한 공산분자를 현장처형했다고 적당하게 시나리오를 날조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거기다가 반민특위요원 10여명에 대한 암살계획까지 탄로가 나서 정가는 혼돈에 빠져 급기야 암살음모자들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런데 음모자 네명중에 둘은 무죄로 석방이 되고 나머지 둘은 겨우 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을 뿐이었다. 너무나 의혹이 짙은 재판이다.
뿐만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까지도 반민특위를 비난하는 담화문을 발표하여 끝내 8개월 단명으로 반민특위는 해체되고 말았다.
반민특위가 재판한 친일파는 고작해야 10여명에 불과하였는데 그것도 7명만 실형을 선고받았고 1950년 봄까지 모두다 석방이 되고말았다.
간판만 형식상 반민특위로 내걸었다가 떼내버린 꼴이 되고말았다.
과연 이것이 일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한 방도였던가. 우리와 비슷한 시점에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불란서의 경우는 어떠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불란서가 독일에 점령당한 기간은 일제식민지 36년의 10분의 1도 안되는 3년에 불과했다.
기껏해야 3년에 지나지 아니한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나치협력자들에 대한 심판은 냉혹하고 준엄했다.
무려 2천건 이상이나 사형이 선고되었고 징역형실형을 선고받은 수만도 4만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렇다고 하여 불란서와 같이 수많은 사람을 엄벌로 다스렸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 그와같은 가혹한 대량처벌이 식민지잔재를 청산하는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민족의 상처는 가급적 빨리 아물게해야 할것이다.
그러자면 처벌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허나 우리의 반민특위는 최소한의 요구마저 외면해 버린 것이다. 수많은 친일파들중 극소수만 처벌하는 시늉만 보였다가 정치연극이 되고만 셈이다.
어디 그 뿐인가. 위대한 독립운동가를 암살한 현역 육군소위 안두희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도 1년만 복역한뒤 석방되었다. 그리고선 군에 원래 복귀시켜 중령까지 진급하는 영예를 누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연극이 아닌가. 이러고서도 이민족의 장래에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기대할 수 있단말인가.
이렇듯 반민족 반민주로 그릇되이 출발한 현대사는 결국 일제잔재를 극복하지못해 그로인해 도처에서 모순이 드러나게 되었다.
친일문인들의 글이 국정교과서에 실리게 된 것이라든가, 정계에서 친일파들이 여전히 영당을 계속한일.
또 공화당정권때의 민족자주성을 훼손한 이른바 한일 회담의 타결. 독립기념관 대화재사건. 이렇게 시행착오가 거듭되고 있는 것으니 아직도 일제잔재를 청산하려는 민족자존의 의지와 노력이 결핍된 까닭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민족적주체성을 확립하는일을 미룰 것인가.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 천신만고끝에 쟁취한 더없이 소중한 기회가 모처럼 찾아왔다. 민주·자주의 대도를 기필코 성취시켜야 할 정녕 변화의 몸짓이 필요한 때이다.
서석구
<민첸시오·대구법조인회 부회장>
◇1944년 경북 달성生
◇경북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대구지방변호사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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