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년 호랑이 해,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한국의 상징으로 호랑이를 드는 것을 보면 우리 나라도 예날에는 삼림이 깊고 많았나보다.
삼림은 풍요한 옷이요, 삼림은 수호자이다. 삼림 속엔 해열의 어스름이 깃들어 있다.
◆호랑이가 살던 삼림
수목은 하늘로 뻗어 천상의 세계와 경계하고 땅에는 뿌리내려 지층을 뚫는다. 여기 생명의 순환이 있고 사계의 순환이 있으며 삼림 속에는 일련의 사이클과 낮과 밤의 변화만이 있다. 도시에는 빌딩의 숲이 우거져있고 그 사이 고속도로의 구조화된 공간과 시간이 가지는, 물기라고는 없는 메카니즘이 있다. 레뷔 스트로우스의「슬픈열대(熱帶)」라는 작품에는 다음과 같이 삼림을 찬양한 말이 있다.
『…현재 나를 매료시키는 것은 삼림이다. …삼림 가운데로 수십미터만 들어가도 바깥 세계를 잊을 수 있다. 일상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있어…정적, 상쾌함, 평화…가 살아난다. …삼림은 다른 자연과 같이 풍성하고 마치 새로운 흑성의 세계와 같다』
호랑이가 살던 삼림, 풍성한 자연으로 돌아 갑시다. 자연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다시 자연으로 환원할 수 있다. 실크로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찾아나서고 있다.
조물주는 지구가 백일몽과 같은 꿈속의 부질없는 그림으로 보이거나 광인의 극단적인 상상력에 의하여 빚어진 허무맹랑한 예술적 개념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의식 속에 시시각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충격이 되풀이되어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침전한다. 지금 한국인의 잠재의식 속에는 정말 영롱한 무늬가 그려져있을것이다.
◆영리한 바보들의 나라
현실은 그렇게 불행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닌데 모두가 떠들고 있다. 詩도 멋도 문화도 없고 조용히 살 줄 모른다.
남이야 어떻든 내 용무만 마치면 되는 세상으로 착각하는 영리한 바보들의 나라인것 같다. 남보다 앞서려 하지않으면 마음이 느긋할텐데 강해지기 위해서 남의 힘도 빌리고 없는 일도 꾸며대어 비지덩이 살만 찌워 혼자선 일어설 수도 없으면서 천방지축 날뛰는 세상이라니 서둘러도 길은 하나인데 정말 장자의 기풍이 아쉽다.
아무리 인간이 실의와 우수에 빠져있어도 희망을 빼앗긴 적이 없다.
희망의 푸른 숲이 어디엔가에 자라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역사적인 그리고 시간적인 전망 속에 있으며 현실의 인간생활은 시간과의 경쟁이며 시간과의 타협이며 또한 시간과의 유희이다.
현대의 과학문명과 대도시화된 인간성은 자연과 너무나 유리되었다.
인간은 능률과 공리에 쫓겨 인간이 누려야 할 생활시간을 잃어버리고 소외당하고 일상의 리듬은 깨어졌다.
시계가 인간을 위하여 있는것이지 시계를 위하여 인간이 있는것은 아니지만「시간은 조락이다」라는 릴케의 말처럼 시간의 무상성은 인간의 모든 것을 빼앗는다.
◆유토피아는 우여곡절 끝에
젊은이는 양양한 미래를 체험하고 과거는 망각한다. 오늘의 첨단과학과 정보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컴퓨터를 통하여 읽는다면 희망도 정신적 모험도 갖지 못할 것이다.
유토피아는 우여곡절 끝에 찾아지는 것이다. 삼림 속에선 길을 헤매는 일도 있다. 디지탈 시계의 직접적인 순간과 모래시계의 자연적인 흐름을 동시에 읽을수 있는 현대인이 되어야한다.
3년이나 사하라사막에서 생활한 쎙떽쥐뻬리는『사막에는 절대 충실한 시간이 있다』고 했다. 사막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은 일상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사막은 엄숙하고 생명도 당장에 없애버리는 지극히 절박한 상황에 있는 것이다.
더우기 정주할 수 없기 때문에 뜨내기가 되어야 하고 절대절명으로 필요한 것 이외에는 버려야하니 단순할수 밖에 없다.
이웃이 더 잘살면 가만히 앉아서 감봉된다는 사고방식의 사회, 빈곤과 기아 때문에 불편스러운 것이 아니라 시새움으로 불편스러운 시대, 반항아적 기질의 아들이 탕아적 불출이 아들보다 낫다고 하는 생각, 소문이 신바람 나는 나라.
◆호불호가 없는 사막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을 구하고 오아시스를 찾아야 한다.
사막은 인간에게 숙명적으로 대지(大地)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절감시킨다. 그 엄숙함 때문에 정신의 순화를, 그 단숨함 때문에 정신의 풍요를 가지며 넓은 지평은 자기를 해방시키고 자신으로 돌아가게 한다. 왜냐하면 긴 전망 전체가 우리들을 자신에게 돌려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상(日常)에서의 탈출이요 정신적 상승이다. 사막에선 호(好), 불호(不好)가 없고 시련이다. 사막에서 인간은 문명의 이기(利器)에 의한 도시생활에서 멀리 떨어져 자신에게 성실한 생활을 한다. 이스라엘민족의 출애급은 유목생활에서 벗어나 도시화의 타락을 맛보고 다시 순수성의 보증을 찾기 위하여 사막으로 돌아가는 일을 되풀이 했다. 이처럼 도시화의 위험을 사막같은 엄숙한 자연에서 정화해야겠다. 사막이든 삼림이든 대자연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고 호랑이의 기상을 타고났다면 고요한 삼림의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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