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을 맞이할때마다 『네 나이 70넘은 생애에 무엇을 했느냐?』하는 책문(責問)이 내귀에 울려온다. 그러면『하도 바쁘게 살아왔기에 무엇을 했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납니다』하고 파란곡절 투성이의 지난 세월에 멍이 들어 건망증에 굳어 빠진 대답을 한다.
쓸모없는 늙은 인생, 오랜 세월에 이 세상의 온갖 때와 먼지가 몸에 저려, 허물투성이의 주름살이 쭈글쭈글한것이 마치 죄값의 낙인인양 거울조차 들여다 보기 싫은 내 자신이 아침 저녁 식탁에서 집안의 가장이랍시고 기도를 인도할 때마다 송구스러움을 느낀다.
천진난만한 손자 손녀가 두손 모아 기도드리는 모습, 마치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과 같은데 내 자신의 어린시절은 너무나 미웁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소년시절, 청장년시절, 그리고 늙은 막바지의 지난 세월을 통틀어 모두가 미웁기만 하고 한번 돌이켜 생각해볼만한 추억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니 주님의 물으심에 무어라고 대답하랴. 다만 숨가쁘게 살아왔다는 것이 핑계가 될 뿐이다.
우리 본당(서울 강남 논현천주교회)에 나와 같은 늙은이가 18명있어서 신심단체인「요셉회」의 모임을 갖고 있다. 성요셉을 모범삼아 겸허한 몸가짐으로 언제나 뒷그늘에서 이웃과 남을 돕는 일을 하며, 서로가 한형제의 화목으로 고이 여생을 보내자는 것이다.
이곳 논현동은 서울에서도 물질적으로 부자가 많이 모여살고 있는곳으로 알려져 있어서 우리「요셉회」늙은이들도 노후여생을 편안하게 지낼것이라고 짐작할지 모르나 그것은 큰 오해이다. 그날 그날의 일과가 몹시바쁘고 고달픈 생활만 하고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반 평일미사에 나가면 꼭 한두차레의 연도 병자위문 등에 동참하게 되고 대자의 지도 예비자의 인도 등에 하루의 시간을 다 보낸다.
몸만 고달플 뿐만 아니라, 아들과 며느리에게 한달에 한번 받는 용돈마저 받은지 얼마안되어서 떨어져 할수없이 시간강사(한문ㆍ일어)의 부업까지 하게 된다.
금년초같이 유난히 추위가 심한 때에는 하루에 한두명씩 교우의 선종이 이어져, 몸 하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였다.
허나, 이 고달픔과 늙은 육체의 온갖 장해를 싹 씻어없애는 시간이 있으니, 이른 아침 평일미사에 들어가기전 20분동안의「십자가의 길」묵상에서 통회의 눈물을 흘릴 때다. 묵상과 기도 중에는 나의 피곤함과 늙음이 없고, 오직 천진난만한 동심이 되살아나 참으로 홀가분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 느낌이야말로 내 영혼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천주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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