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 3월 9일 명동대성당 정오미사 강론을 통해「정의와 평화를 간구 하는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민주화는 하느님과 화해하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된 이 메시지는 본보를 통해 많은 신자들에게 전해졌고 일반사회 각 일간신문에도 요지가 보도되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메시지가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의미는 지대한바 있다. 1960년 대 이후 한국 사회는 획일주의 정치체제 아래 민주주의의 심각한 차질을 겪어 왔다. 이와 같은 상황에 저항하는 민주세력들은 체제 권력의 박해 아래 격파되고 봉쇄되어 왔다.
이 어려운 상화에서 가톨릭 교회는 특히 1970년대 이래 「사회정의」운동의 기치를 내세웠다. 그러한 중에서 김 추기경은 정부가 1971년에 추진한 비상조치법에 대하여, 1985년에 기도된 학원안정법에 대하여 의문과 반대 견해를 표명하였다. 그리고 금년에 들어와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를 위한 개헌서명」운동이 전개되는 계기에 김 추기경은 다시『개헌은 빠를수록 좋다』는 소신을 표명하였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양심의 구심점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 최고위 성직자의 이번 메시지는 대단한 결단으로 보이며, 그만큼 일반에 미치는 영향력도 지대하다고 보게 된다.
김 추기경의 이번 메시지는 물론 시사적 차원의 시시비비가 아니고, 「인간 존엄의 정신」「하느님과의 화해」라는 차원에서 소신을 표명한것이다. 그러나 그 어떠한 보편적 진리나 정의도 그것이 세상에 구현될 때엔 하나의 구체성을 취하게 된다.
그 구체성이 이번에「개헌」이라는 문제로 나타났다. 개헌문제는 최근 우리사회에서 정권과 민주세력이 극한대립을 계속해 비극적 파탄에 이르느냐, 아니면 국민화합의 다행스런 전기를 가져오느냐 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 되어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면서 김 추기경은 개헌문제에 대해 대략 다음과 같은 조목으로 정리해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였다.
①개헌을 하겠다는데 있어서는 여ㆍ야가 모처럼 의견을 같이하기에 이르렀다.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기에 헌법을 고치는 것이라면 잘못을 고치는 것은 빠를수록 좋은 일이다.
현 대통령은 현행헌법이 규정한 임기를 채우고 물러날 것을 계속 다짐하는 한편 89년 개헌을 주장하고 있는데, 개헌ㆍ단임ㆍ평화적 정권교체를 할 것이라면 임기전에 개헌을 해서 새 헌법에 의해 탄생하는 정부에 정권을 넘기는 것이 진정한 단임정신의 관철이라고 본다.
이런 방향으로 민주화 일정을 정부가 발표한다면 학원가의 시위 사태도 가라앉을수 있고, 86년의 아시안게임과 88년의 올림픽도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가 될 것이며 현 대통령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기틀을 바로잡아 준 분으로 역사에 빛나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큰 정치」가 아니겠는가?
②개헌청원 서명운동은 인간의 기본권에 속하므로 저지되거나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민주화를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이것은 시대의 요청이요 우리 국민 모두의 소리요, 하늘의 뜻이므로「민주화는 곧 하느님과 화해하는 길」이다.
그런데 저명인사나 국회의원 혹은 성직자들이 개헌서명을 한 것은 문제시하지 않고 오직 학생들의 서명만 이 문제시되는 것은 불공평한 법운용이다. 물론 학생들은 제발 공부에만 열중해 주게 되기를 바라지만, 학생들은 결코 우리의 적이 아니고 우리의 미래 세대이므로 사랑으로 키워주어야 한다. 학생ㆍ노동청년ㆍ정치범들에게 아량이 베풀어져야 한다.
인간이 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법이 인간을 위해 있는것이므로, 법을 명분으로 하여 무분별한 제재를 가해서는 안된다.
③오늘의 우리사회 사태는 필리핀의 경우와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한국의 현정권 안에 오늘의 우리사회 사태가 얼마전의 필리핀과 왜 같으냐고 항변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들은 그 같지않은 점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족벌ㆍ부패ㆍ빈부격차ㆍ고문ㆍ불법체포ㆍ언론탄압 등이 없음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한국 사태가 필리핀의 경우와 다르다면, 그것은 앞으로 사태를 개선할 과제와 그 가능성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오류를 범한 이들은 반성하고 자신을 정화해야 하며, 자기 희생을 무릅쓰고 민주화를 추진하는 이들은「사랑하기 위한 싸움에서 미움만이 남아있지는 않은지」반성해 보아야 한다.
필리핀에서처럼 어떤 특정인들이 버림받는 민주화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한국과 필리핀의 다른 점이다.
우리는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탕자처럼 회개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가 화해해야 한다. 이것없이는 정치력의 발휘도, 대화도 끝없는 대립과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다.
이 시국에 있어 김수환 추기경의 이번 메시지는 결코 지나친 이상주의도 아니고, 어느 일방에 대한 가혹한 단죄도 아니다. 실로 인간 형제 모두를 사랑하며 십자가의 사명을 아는 이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의 충정어린 민족애의 외침이 빈들판의 외로운 메아리로 끝나지않게 하는 것이 또한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