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예수여…시청각 기술의 책임자들이 당신 사랑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올곧음을 중히 여길줄 알고 모든 시청자들이 생명의 생을 찾고 더러운 물을 마시지 않도록 그들을 비추어 주소서. 우리는 영화의 남용을 보속하기 위해 당신께 매일 노동과 함께 오늘 지상에서 거행되는 모든 미사를 바칩니다…』
매스컴 종사자들을 위한 기도의 한부분을 적어보았다.
의미심장한 내용이며 이 분야 관계자들의 책무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교회 안팎으로 관심을 모은 미국영화(콜롬비아사 85년도 작품) 「신(神)의 아그네스」가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국내 상영중에 있어서 영화매체에 대한 바른 인식과 함께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난해한 소재를 격식있는 오락 영화로 만들어냈다고 자체광고를 하고있는 이 작품은 보고나서도 역시 어렵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존 필미어의 희곡을「지서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위 노만 주이슨이 연출한 이영화는 순진하고 아름답고 나이어린 예비 수녀가 수녀원 자기방에서 아기를 낳아 탯줄로 감아죽이고는 휴지통에 던져버린 사건에서 시작된다.
죽은 아기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수녀원에서 과연 그런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면서 법정 정신과 의사 마사 리빙스턴(제인ㆍ폰다)을 등장시켜 수녀원장 미리암 루드(앤 ㆍ 반크로프트)와 불꽃튀는 연기대결을 벌이게 하면서 아그네스(멕ㆍ틸리) 수녀의 정신감정에 들어간다. 정신에 이상이 있으면 정신병원으로 보낼 것이고 정상적인 상태라면 살인죄를 적용해 교도소로 보내야 하는 처지에서 여의사는 젊은 수녀를 추궁해 나간다.
그러나 아그네스는 임신한 사실도, 분만한 사실조차 기억에 없노라고 말한다. 원장수녀도 아그네스에게는 아무런 허물이 없다면서 그가「신(神)의 딸」임을 암시하려거고 든다. 이것이 과연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인가. 의사는 결국 두번에 걸친 최면술로 아그네스가 실제로 아기를 낳았고 자기 손으로 그 아이를 하느님에게 되돌려 주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허나 이것으로 모든 것이 풀리지는 않았다. 법정에 선 아그네스는 『그분이 내게 아기를 주셨고 그날부터 언제나 창가에 와서 노래를 들려주었다』면서 러브송을 흥얼거리는 것이 아닌가. 관객은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되고만다.
이 영화는 예술에 있어서의 소재나 표현의 자유, 또 가톨릭에 대한 오해의 여지 등 논란이 있었던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86년 7월 공연윤리위원회의 수입불가 조치에 따라 일단개봉이 취소된 적이 있었다. 당시 공륜은 이 조치를 내리기에 앞서 가톨릭 매스컴 관계 성직자 및 수도자 9명의 의견을 들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①원작이나 국내에서 공연된 연극은 신비를 염원하는 인간의 열망에 초점을 맞춘데 비해 영화는 흥미위주의 영상만을 노리고 있으며 ② 종교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적 시각에서 조명, 교리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교회측 의견제시는 이 영화의 수입불가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 단지 영화내용에 대한 교회의 입장만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이 영화는 원작자가 각색에까지 손을 댐으로써 전체적인 뼈대는 유지했으나 단 세사람 (아그네스와 수녀원장 ㆍ의사)만이 출연해서 시종대사로 일관한 연극과는 달리 많은 등장인무로가 배경, 그리고 부수적인 사연들이 따르고 있다.
원작에서는「기리에 엘레이손」으로부터 시작해 중요한 미사곡들이 모두 라틴어로 불리워지고 있는데, 영화에서는 두어곡이 아그네스의 입을 통해「신의 소리」로 전해진다.
요컨대 이 영화는 논리적으로 따지려들면 이해가 더욱 멀어질뿐, 느끼는 그대로를 간직하되 소재 자체가 극단적이라는 점을 전제로해야 할 줄 안다. 알콜중독자로서 윤락가에 몸담고있던 여인의 딸이 예비수녀로 입회한 것이며 그 윤락녀의 언니로서 여러 자녀를 둔 가정부인이 남편과 사별한 후 수녀원장이 됐다고 하는 설정자체가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를 두고있기 때문이다.
여기서「교황청 매스컴위원회 홍보수단에 관한 사목훈령」의 한 대목 (55항)을 옮겨본다. 『예술가들에게 도덕가의 역할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예술가들이 인간생명 저너머의 영광스럽고 신비로운 빛의 세계를 열어보일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자부해 주기를 바랄뿐이다』
실로 오랜만에「하느님」으로 표기된 자막을 볼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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