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부친상을 당한적이 있었다. 난생 처음 죽음을 맞닥뜨리고 크게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이 50이 넘도록 아직 상을 직접 당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종의 자리에도 가까이 하지 못한 나는 불효의 자책 이전에 먼저 서둘러야 할 일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아버지를 어느 묘지에 모시느냐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남녘땅 고향멀리 떨어진 곳에서 운명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맏상주로서 형제들과 의논끝에 고향땅 가까운 천주교묘지에 안장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때부터 3일장이라는 한정된 시간안에 모든 절차를 바쁘게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슬픔을 토해낼 겨를이 없었다. 마치 능숙한 장의사의 사람처럼 거의 한순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렇게 아버지를 땅속에 모셨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전래의 장례예절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길고 까다롭고 길컷울고 한탄하고 그래서 죽은자에 대한 산자의 경외의 마음이 교향악처럼 앙상블을 이루는. 그러나 우리는 믿는자의 믿음이 있어 교향악이 아닌 소품의 실내악처럼 죽음을 마음만으로 삭인다.
운명했다는 전갈을 받고 황급히 아버지곁으로 다가온 나는 바쁜 마음에도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을 보고 싶었다. 병풍뒤에서 침묵하고 계신 싸늘한 냉기의 얼굴을 만져보는 순간 아버지는 이미 여기에 계시지않다는 직감을 받았다. 신비스런 느낌의 직감이었다고나 할까. 생전 처음 대하는 주검인데도 어떤 확산처럼 아버지의 부재(不在)를 뇌까린것이다.
그것은 전광석화처럼 나의 뇌리를 꿰뚫고 지나가는 영혼에의 믿음이었을 거라고말할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아버지의 형상은 있으되 아버지는 출타하고 계시지 않는 불가사의한 만남. 이미 당신은 하느님 나라에로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이 고해를 살다간 역사의 흔적만을 남기고 계신 것이다. 그런느낌이 전류마냥 몸으로 번져오자 어떤 승리감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면서 슬픔을 격절시키는 것이였다.
비록 물먹은 창호지 같은 믿음이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섭리하심과 영혼이 있음을 나름대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지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단절감에서 오는 아버지의 환영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슬픔은 후유증으로 남는 것이었다. 역시 인간적인 약점이란 단절감 절망감에서 더해지기 마련인 모양이다. 그것도 죽음을 만났을때는 더욱 절실할는지 모른다. 문득 믿음이 없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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