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는 한국인으로서 첫째 신부요 순교자요 복자인 김대건 신부가 탄생한 지 1백55년 그리고 순교한 지는 1백30년이란 이중적으로 뜻깊은 새해를 맞아 금년부터 3년의 계획으로 김 신부의 출생지「솔뫼」를 대대적으로 성역화하기로 하고 이에 관한 기본 계획을 발표하였다. (본보 지난호 3면)「솔뫼」는 오늘날 唐津郡 牛江面 松山里에 위치해 있다.
성역화 사업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대지 7천8백여 평에다 총공사비 2억1천여만 원을 들여 연차적으로 담장ㆍ동상ㆍ제단ㆍ전시관ㆍ주차장ㆍ生家 등을 건설해 나갈 것이라 한다.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솔뫼는 3년 후에 명실공히 성지로서의 기반과 면모를 갖추고 한국 교회 사상 최대 규모의 성지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새해 들어 우리를 흐뭇하게 하고 고무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작년 시성시복운동이 완만하게나마 전국에 번져 나갔고 이와 보조를 맞추어 일부 성지가 개발되거나 보수된 것은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전주 이루갈다 산소에 처음으로 제대가 건립되었고 미리내는 9월의 현양대회에 대비하여 수원교구가 도로와 주차장을 확장하고 김대건 신부의 대리석 상도 세웠다.
부산교구도 오륜대에 순교자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하고 지난 9월에 기공식을 가졌다. 그러나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언제 준공이 될지 모르는 상태라고 하며 전국 교우들의 참여를 호소한 바 있다.
우리는 아직 새로운 성지의 조사 확보는 차치하더라도 기존 성지의 보전 상태마저 만족하다고 볼 수는 없다. 전세버스에 올라 성지순례를 갈 때마다 우리 교회의 유적지가 역사상의 다른 유적지에 비하여 너무나 빈약하고 초라한 모습에 새삼 놀람을 금치 못한다. 성지에 따라서는 버스조차 들어갈 수 없어서 도중하차를 해야 한다. 기사나 안내양을 나무라기에 앞서 그런 곳을 성지라고 쫓아다니는 자신이 먼저 얼굴을 붉히게 된다. 성지 중에는 성당과 전시관이 제대로 갖추어진 데가 없지 않아 있으나 순례자들을 위해 휴게소나 피정의 집 같은 부대시설이 갖추어진 곳은 오직 한 곳도 없다.
도대체 성지 개발이 부진한 이유는 나변에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역사의식의 부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역사의식은 물론 역사 지식을 전제로 하는 것이겠지만 역사 지식과는 별개의 것이다. 지식이 과거에 머무는 반면에 인식은 오늘의 관심에서 과거에 질문을 던지고 거기서 교훈을 찾아 새로운 미래를 설정하게 한다. 과거에 뿌리를 깊이 내릴수록 다시 말하면 역사적 인식이 정확할수록 현재가 정리되고 미래가 올바로 設定되는 것이다.
「역사는 인생의 스승이다」. 흔히 들은 말이지만 그것은 수천 년의 경험과 인간 문화의 원칙을 요약하는 놀라운 金言이다. 자기 교회의 수난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이 있을 수 없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못하는 교회가 자아 비판과 자기 의식을 가질 수 없다.
한 민족의「아이덴트티」란 곧 그의 주체의식이 민족 문화의 재발견에서 오는 것이라면 한 교회의 주체의식도 그 교회의 전통신앙의 새로운 발견에서밖에는 있을 수 없다.
역사의식이란 듣고 읽는 것만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역사의 現場을 찾아 몸소 역사를 느낌으로써 얻어지는 귀중한 체험이다.「성지순례추진회」가 연중무휴로 성지순례를 추진하는 취지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역사의 옛 전쟁터가 護國의 얼이 담긴 곳이라면 교회의 성지는 순교 선열들이 피와 땀으로써 교회를 수호한 護敎의 얼이 담긴 현장이다. 아니「솔뫼」같은 곳은 護敎의 場일 뿐더러 동시에 護國의 場이다. 왜냐하면 민족적인 차원에서 볼 때 김대건 신부는 능히 반열에 들기 때문이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성지를 모두 성역화 한다는 것은 불과 1백만 신도에게 벅찬 과업일지도 모른다. 더우기 지방 교구일수록 그러한 실정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솔뫼」성역화 사업에 있어서도 거교회적인 협조에 호소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모두가 더불어 믿고 증거한다는 신앙 존중의 공동체의식을 갖는다면 이 같은 호소가 지당한 것이고 동시에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차제에 제안하고 싶은 것은 교구 단위의 산발적인 개발이 아니라 거교회적으로 공동으로 개발하라는 것이다. 선교 2백주년을 목표로 세우고 7년간의 계획 아래 철저한 답사와 고증을 거쳐 우선「聖地總覽」을 펴낸 뒤 순서적으로 연차적으로 성역화 사업을 추진해 나간다면 보다 효율적인 성지보수를 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교회적인 참여 요망도 훨씬 호소력을 지니게 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솔뫼」의 경우 또 한 가지 기우일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시초에 철저한 고증을 거쳤더라면 또 대지를 매입해야 하는 부담은 덜 수 있었을 것이라는 교훈에 비추어 이번에는 그러한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게 철저한 고증을 부탁하고 싶다.
끝으로「솔뫼」성역화 사업이 부디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기원하면서 차제에 우리도 모두가 성지에 대한 인식과 성역화 사업에의 참여의식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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