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 되면 세종대왕의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칭찬이 요란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만이다. 이조시대의 지성인은 한문과 전통 유학만을 숭배하고 한글은 무식한 서민과 아녀자들이나 쓰는 글로서 한문을 상류로, 한글은 하류로 생각하였다. 그러고 보면 한글을 사랑하고 그 명맥을 이어준 것은 서민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날에도 순수 한국어는 사투리나 俗語 또는 상말로 전락해버리고 한문은 지성인의 용어로 쓰이며 더욱이 요사이는 식자들이 서양 외래어를 섞어 쓰면서 한국어를 소외시키고 있는 것을 너무 많이 듣고 보게 된다. 中華 앞에 小中華로 자처하던 그런 사고방식은 아직도 우리 국민에게 잠재하여 있고 또 그런 사람들이 천주교에 귀의하고 나서는 로마 중심으로 탈바꿈하는 수가 많다.
종교행사를 할 때마다 로마식 로마가 인정하는 것에 안도와 신뢰감을 갖는 사람이 많다. 그밖에도 레지오 마리에는 애란을, 꾸르실료는 스페인을 너무 철저하게 모방하고 있다. 왜 한국인으로서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한국 민족 문화에 세례를 주어 한국을 키우고 빛낼 생각을 아니 할까?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려는 것」(요한 10ㆍ10)이라 하신 더 풍성하게 해주실 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에 더 풍성한 생명을 주신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 신자 모두는 한국적인 것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한국적인 것에 세례의 물을 쏟아주어 가꾸는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초대 한국 천주교회의 지도자들이스스로 성직자단을 조직해서 미사와 제반 성사를 집전한 창의성과 자주성과 용기를 높이 평가하고 싶은 반면 이것을 금지한 당시 북경의 선교사들, 그러므로 그 성직자단을 교회사에 「가성직자단」이라고 기록한 것을 서운하게 생각한다.
한국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로마 교회법이 요구하는 獨身者가 아니고 신학과정을 이수하지는 못했지만 로마 교회법은 그곳의 실정에나 통할 일이고 그 당시의 한국 실정에는 방해가 되는 것이므로 오히려 북경의 성직자들이 한국 지도자들을 불러 신품성사를 주었어야 할 것이다.
요사이 우리 신앙의 선조들인 우리 순교자들의 시성식 운동이 활발하려 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위대한 순교자들을 성인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시성운동인 줄 착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순교자들은 누가 뭐라 해도 이미 성인들임에 틀림없다. 시성운동이란 다만 로마 교회법적인 재판의 절차를 밟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 재판 절차가 그렇게 중요할까? 오히려 로마 교회법의 재판 절차가 우리 순교자들을 성인으로 간주해 주건 말건 우리는 그분들을 우리의 성인으로 알고 또 모시며 그들의 행적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유교나 불교가 우리나라에서 발상된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 것이라 생각하고, 예수님은 서양 사람이 아닌데도 서양 사람으로 여기며 그리스도교도 서양 종교라 여기는 사회 현실에서 우리는 서양의 종교적 구제 물자를 벗어버리고 복음을 통한 한국의 민족상을 가다듬고 창의적인 개발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사제의 일요일이 한가할 수가 없는데도 한가한 이야기를 뼈아프게 해본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