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오실때까지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전하며 주의 부활하심을 굳세게 믿나이다』
오늘 온세계 성당에서는 신앙의 신비를 노래하는 기쁨의 종소리가 울려퍼져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앙의 중심이요 기초인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숙명적인 죽음과 생명욕에 대한 욕구의 수수께끼를 풀어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조차 못믿었던 부활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쉴새 없이 발동하는 영원히 살고자하는 욕망과 틀림없이 맞이해야할 죽음의 갈등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울음으로 시작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인 매일 다가오는 고통에 의해 끝을 맺는다.
왜 죽어야하나? 무엇때문에 고통을 겪어야하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 죽음의 그늘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는 없는가? 이같은 질문은 인류역사를 통해서 계속 이어왔고 오늘도 말없이 인간은 이 질문을 되풀이 하고있다.
고통과 죽음은 절망과 아픔을 주는 것이고 아픔을 주는 것은 또한 벌이다. 매를 맞거나 감옥살이를 하거나간에 벌은 아픈 것이다.
인생이 이 고통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연대적으로 치르어야 할 벌이고 벌을 받게끔 저지른 잘못인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비극적 뿌리는 죄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음을 초래한 죄를 없애기 위해서 속죄의 제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가운데 오셨고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부활하신 것이며 죽음의 원인인 죄를 없이했기 때문에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되찾아 주시려고 부활하신 것이다.
◆부활은 신앙의 신비
우리는 십자가와 죽음을 통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다. 즉 부활은 신앙의 신비이며 교회는 사도들의 뒤를 이어받아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인 것이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부활하신 다음 비어있는 그의 무덤을 목격하고도 제자들은 의심하였고 주의 시체를 향유로 바르기 위해서 여자들이 걸음을 내디디면서도 주의 부활하심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무덤 앞에 가로 놓여진 돌문을 누가 치워 줄 것인가를 걱정했다.
문이 닫힌채 제자들이 모여있는 방에 나타나시어『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고 말씀 하시자 제자들은 도깨비나 귀신인 줄로 여겨 겁에 질렸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신앙으로써만 가능하다.
◆죽음은 부활의 필수조건
제자들이 스승의 부활을 믿고 그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어떠한 고통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했다.
현재 인간의 여건으로서는 고통과 그 총결산인 죽음을 통하지 않고서는 부활이란 있을 수 없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 비로소 부활했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기계가 고장이 났을 때 고장난 일부분만 수리한다면 얼마가지 않아서 또 말썽을 부린다.
완전히 수리하려면 그 기계를 완전히 부숴버리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
죄로 고장난 인간을 근본적으로 고치려면 완전히 부셔버리고 새인간으로 개조해야만 한다.
인간을 완전히 부셔버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죽음은 또한 부활에 이르는 필수조건이다.
죽음과 반대인 부활이란 형식으로 인간의 끝없는 수수께끼를 풀어준 그리스도의 부활을 우리 신앙의 신비이며 이 신앙이 있기에 우리는 고통과 죽음에 희망을 둔다는 모순된 표현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전생애에 깔려있는 가시밭을 부활에 이르는 필수과정으로 알고 삶의 보람을 느끼며 웃음을 머금은채 살아갈 수 있다.
◆유물론이 득세하는 현대
오늘의 세계를 여러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신앙의 결핍과 물질주의의 만연이라고 묘사 할 수 있다.
지구를 두 갈래로 나누면 반은 유물론적 공산주의 이념으로 신이 없는 세계이며 또 다른 반쪽은 민주자유진영이다.
민주자유진영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삶의 목적과 행동의 동기가 현세 물질의 가치에 두고있다면 이념상으로 그들은 물질주의를 따르는 자들이다. 그러면 과연 이 민주자유진영에 몸담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일상생활의 목적을 신앙에 바탕 두고 있을까?
이렇게 볼때 현대는 신앙을 잃어가며 유물론이 득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는 지금 실질적으로 공산주의 이념인 유물론으로 물들어가고 이 상태로 나아간다면 인류는 결국 공산주의로 몰락하고 말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그 어느때 보다 물질주의의 허황됨에서 정신을 차리고 자기의 과오를 깨달으며 떠나버린 아비의 품으로 발길을 옮겨야하며 신앙을 되찾아야 할 때라고 본다.
이 신앙을 찾을 때, 비로소 모든 고통과 죽음까지도 웃으며 맞이할 것이며 참된 빛이요, 희망이신 그리스도의 부활에도 이끄는 길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며 이 생명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가 다시 오실때까지 그의 죽으심을 실천하며 부활의 빛을 향해 걸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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