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소년의 새벽잠을 깨우는 어머니. 아직도 찬기운이 가시지 않은 거리를 소년은 계속 잠투정을하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바쁘게 가고있다. 얼마를 걸었는지 몰라도 소년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하나둘씩 맺힌다. 이윽고 찔레꽃향기 그윽한 오솔길에 들어섰을 때야 소년은 성당이 가까웠음을 습관적으로 알게된다. 찔래꽃향기가 싫지않은 소년은 그제서야 새벽잠을 깨운 어머니를 용서한다. 그리고는 성당의 찬마루바닥에 꿇어앉아 언제나처럼 미사를 본다. 왜 주일마다 새벽행군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의문을 가지면서-.
어릴적 마산에 성당이 하나밖에 없을때의 일을 잠시 떠올렸지만 이른바 구교우들에게 이와 비슷한 추억이 누구나 있으리라.
이렇듯 하잘것없는 어릴적 추억담을 새삼 말하는 것은 내 나름대로의 어떤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계 생활 20여년을 해오는 동안 나는 적어도 그 절반 이상의 세월을 주일을 지키지 못했었다. 어쩌다 성당에 갈때면 마치 낯선 집을 기웃거리듯 서먹한 느낌으로 한쪽 구석에 앉아 벙어리미사를 드릴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성당한 곳을 꾸준히 계속 다녀본 적이 없었다. 이동네 저동네로 이사를 자주 다녔기 때문이다.
그 뿐이랴!. 예술한답시고 배울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 알 것 모를 것, 해야할 것 하지말아야할 것 등등의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도 적잖이 체험했었다. 그러니 가뭄에 콩나듯 설령 성당을 찾았다고해도 고백성사 볼 엄두를 못낼 수 밖에-. 몇년만에 얼마를 벼르다가 그 동안의 죄과 중에 큰 항목만을 분류해서 큰마음 먹고 고백성사를 본 일이 기억난다.
이렇듯 냉담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마련인 나를 그렇게라도 건져줄 수 있었던 동인(動因)은 바로 찔래꽃향기로 말미암은 어릴적 기억때문이다. 영신적으로 어두운 나날을 살아오는동안에도 나는 이따금 찔래꽃향기를 생각했고 그러면 하얀 돌벽의 성당과 신부님, 그래서 친진무구하고 지순했던 어린시절을 떠올릴수 있었던 것이다. 그무렵에야 주님의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만은 일상을 살아오면서 그때처럼 청아한 마음을 가진적이 없으리라 생각했고 정서적으로 메마르거나 신앙생활의 어려움에 부딪칠수록 그때를 추상하면 주님에게 의지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찔래꽃향기 그윽한 오솔길의 추억은 지금도 나의 신앙을 지켜주는 파수꾼의 의미를 지닌다. 지금의 우리의 어린자녀들이 성당에서, 가정에서 어떤 모습으로 훗날을 위한 「추억만들기」를 예비하고 있든지 나의 체험에 비추어 적이나 궁금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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