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은 10번째 맞는 구라주일이다. 이날은 고통받고 있는 나환자들과 구라사업의 성공을 위해 기도드리는 날이다.
가톨릭과 구라사업은 교회 초창기부터 밀접한 인연을 맺어왔다. 복음 말씀 가운데는 나환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기적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 나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이었고 치료가 어려웠으며 고통이 심했던 병이란 것을 말해주고 있다. 당시 인간이 질병으로 당하는 고통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나병이었기에 예수께서는 친히 이 병을 깨끗이 낫게 해 주심으로써 인간을 병고로부터 그리고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권능을 갖고 계심을 보여 주셨던 것이다.
이처럼 무서운 나병도 그간 의료진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제는 불치나 난치의 병이 아니고 조기발견 조기치료만 하면 그 무서운 후유증 없이 깨끗이 치료할 수 있게 됐다. 즉 1873년 노르웨이의 한센 박사가 나균을 발견한 이래 그전까지만 해도 미처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나병의 퇴치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바로 하느님의 창조 의지가 인간으로 하여금 나병을 정복케 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나병의 치료가 가능해진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엔 현재 3만4천여 명의 등록 환자들이 나병으로 고생하고 있고 이보다 훨씬 많은 4만6천여 명이 나병을 숨기거나 또는 자신의 감염 사실을 모르는 채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나병이 치유된 음성 나환자들의 생활 터전인 정착장의 생활상은 한마디로 말이 아니다.
그러면 놀라운 특효약과 치료법이 개발된 현재에도 이처럼 나환자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고 또 환자의 생활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크게 당사자들의 무지와 주위의 무관심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나병의 대중 계몽 부족으로 인한 당사자들의 무지로 신환자 색출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발견한 환자들도 이미 치료 시기를 놓쳐 무서운 후유증으로 평생을 불구로 보내게 되는 일이 허다함은 실로 가슴 아픈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바로 나병의 대중 계몽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모든 질병이 다 그러하겠지만 나병은 특히 조기발견 조기치료가 최상의 방법이다. 따라서 관계 기관에서는 이미 발견한 환자 관리 또한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병의 대중 계몽에도 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구라기관이 기존환자 관리에 쫓겨 이 점을 소홀히 하고 있음은 실로 유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오늘날 음성 나환자들의 정착장은 주위의 무관심과 냉대로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동안 각계의 끈질긴 노력으로 상황이 많이 좋아지긴 했으나 아직도 많은 정착장 주민들이 사회의 냉대 속에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일단 나환자임이 드러나면 사회에서 추방되어 정착장에서 비참한 생활을 해야만 한다면 신환자 발견은 그만큼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그 누가 쉽게 자신의 병을 상담해 올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정착장의 이런 생활고를 보고만 있어야 할 것인가. 사랑의 교회에서 이들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행히 가톨릭나사업가연합회는 정착장으로부터 가난을 추방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정착장 자활대책 3개년 계획」에 착수, 1차 연도인 76년에 벌써 많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업이 끝나는 78년도 이후는 정착장 주민들도 시급한 의식주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매우 고무적인 소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사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몇몇 나사업가들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온 국민들의 뜨거운 협조와 우리 신자들의 기도가 뒷받침되어야 할 줄로 안다.
또한 70년 이후 서서히 싹 트기 시작한 구라후원회(릴리회)는 그간 뜻있는 인사들의 참여로 교회 내 후원단체 중 가장 규모가 큰 단체로 성장했다. 이제 이 후원회의 회비만도 연간 1천만 원을 돌파, 구라사업의 재정적 자립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란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후원회는 처음부터 교회 밖에서 그 씨가 뿌려졌고 성장 과정에서도 교회 내의 참여는 극히 저조한 실정이라고 한다.
이웃 사랑 실천을 매일처럼 되뇌이는 우리가 오히려 일반 비신자들보다 이 문제에 관심이 적다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 신자들이 교회의 가르침과 얼마나 거리가 먼 생활들을 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행동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고 했다. 아무리 열 번 백 번 사랑을 다짐한들 단 한 번의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 우리는 말로나 혀 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1요한 3장 18절) 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주위의 가난하고 병든 형제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해 주었는지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끝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불우한 나환자들을 위해 온갖 희생을 다하고 있는 나사업가 제위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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