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 년 전에 가톨릭 의사님들의 모임에서 강론을 한 적이 있다. 강론이 끝나고 회식을 할 때 어느 원로의사 선생님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신부님! 신부님이 로만 칼라를 하고 그 강론을 했더라면 아주 명강론이 됐을 겁니다』 연극이나 음악 연주회라면 무대 배경이 효과가 크리라고 생각되겠지만 로만 칼라와 강론이 그렇게 밀접한 관련을 가지리라곤 생각을 못했었다. 나는 사제복이 말해주는 사제직으로서가 아니라 같은 신을 가진 한 사제로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했을 뿐이다. 우리는 전통과 관습에 젖어서 과거부터 해오던 것에 너무 집착하며 또 거기서 안도감을 가지려 한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전통 속에는 복음의 의미와 거리가 멀어진 것이 많이 있으며 추려서 버릴 것도 많이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옛날에는 아름답고 멋이 있던 전통과 관습들이 지금은 퇴색해서 생명력 없는데도 그것을 보존하려고 진땀을 빼다 보면 우리 교회는 용인의 민속촌처럼 구경거리의 대상, 「로마」중세기의 골동품 진열장밖에 안 될 것이다.
언젠가 사제 피정에 나와 기거를 같이한 룩셈부르그의 신부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 나라에 아직도 서양 주교들이 있습니까?』
『예! 주교들의 한 절반은 서양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했더니 그분의 대답은 이러했다. 『당신들은 아직도 바보를 면치 못했구먼! 외국 선교사들이 한국을 도와주는 것은 좋지만 아직도 지배하고 있대서야 되겠습니까? 어서 밀어내고 한국 교회는 한국인이 맡아야지』
우리가 남의 도움을 받고 있고, 또 도움이 필요하지만 주인으로서의 자각을 잃어버리진 말아야 할 것이다.
어린애가 부모의 도움을 받아서 적어도 30세면 자립을 하는데 우리 한국 교회는 2백년이 됐어도 자립해야 한다는 자각마저 못하고 있는 신자가 많다. 서양인의 종교적 지배권을 밀어내야 하지만 우리 교회의 의식과 종교 용어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는 것이다. 생각 없이 외우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새겨보면 우리가 무엇이 그리 불쌍한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불쌍한 존재인가. 더욱이 혼배미사 때 이 기도를 하려면 말이 안 나와서 나는 차라리 영광송을 올린다. 연도를 할 때마다 「망자」라는 말이 나를 망설이게 만든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산다」(요한 11ㆍ26)는 주님의 말씀을 믿는 우리에게 「망할 망자」 「놈자 자」가 어떻게 해당될 수 있는가?
이것은 「로마」미사 경본을 직역한 데서 나온 어폐이다. 우리나라 말에 내세관을 뚜렷이 제시해주는 「돌아가다」 「세상을 떠나다」 「별세하다」 등의 좋은 말이 있지 않은가? 이 밖에도 미사 경본에는 당장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에 전혀 공감을 주지 못하는 기도문들이 수두룩하며 또 기도문과 성가의 가사에 자학적이고 비관적인 용어가 너무나 많다. 또한 하느님은 아버지요, 우리는 그의 자녀인데도 기도문에서는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로, 주종관계로 표현한 대목이 많다. 이것은 현재 통용될 수 없는 중세기 사회제도의 유령과 같은 표현들이라 생각한다.
아무쪼록 창조자이신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우리도 오늘을 사는 신앙인으로서 모든 것을 다시 창조하는 주체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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