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쌀톨은 천방울의 땀덩어리인데- 요즈음 들녘을 달리거나 산길을 걸으면 마음이 살찌는것 같다. 들국화와 코스모스의 청초하고 우아한 자태와 푸른하늘, 맑은 공기에 잘 익은 곡식들의 풍성한 결실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흐뭇하고 감사스러우면서도 쯤쯤한 죄스러움이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찌들어가는 농촌의 몰골과 주름진 농민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느 시인은 『한 송이 들국화를 피우기위해 밤마다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라고 읊었지만 한알의 곡식이 영글기위해 봄부터 농부들은 얼마나많은 땀을 흘렸고 사랑을 쏟았던가!
실로 한알의 쌀톨은 농민들의 천방울의 땀덩어리요 농부들이 알뜰히 보살피고 정성껏 키워온, 자식처럼 소중한 사랑의 결정체이리라.
그런데 이토록 소중한 곡식으로 만든 음식이 식당에서 마구버려지고 아이들로부터 푸대접을 받으니 안타깝다.
요즈음 젊은 엄마들의 걱정의 하나가 아이들이 밥을 잘안먹는다는 것이고 기쁨중의 하나가 유치원에 보낸 아이의 도시락이 비어있는 것이란다.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해마다 수백만명이 굶어죽고 있는 판국이요, 한 톨의 곡식을 수확하기위해 그처럼 땀흘리는 노력이 숨어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땅에서 굶주림의 설움과 아픔이 없어진지가 불과 수십년도 안되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런 현상들은 안타까운 낭비요 사치스런 걱정이며 어처구니 없는 기쁨으로 느껴진다.
하기야 지금의 어린이들과 젊은 세대들에게 음식의 소중함을 가르쳐 준답시고 『우리가 어렸을때는 쌀밥은 고사하고 시래기죽과 썩은 콩깻묵도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는데…』했다간 그들의 귀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고 그런말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주변머리없는 무능자로 여겨질 만큼 (체험을 못했으니 이해할 수 없을 수 밖에) 변해버린 세상이고 보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러나 아무리 풍요롭고 여유있는 세상이 되었고 앞으로 더욱 풍성한 세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곡식과 음식은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것이다. 곡식은 그 어떤 문명의 이기나 재물보다도 귀중한 인간생명의 근원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곡식의 소중함을 알고 음식의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농부들의 노력에 대한 보답이요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하는 나눔의 행위인 것이다.
농부들은 농작물이 병충해로 병들때 수해로 인해 죽어갈때 그들과 아픔을 함께 한다. 한톨의 곡식에도 마음을 준다.
나는 어느 농부가 참깨를 비면서 이미 익어 쏟아질 몇알의 참깨를 버리지 않기 위해서 조심스레 빈후 보자기를 깔고 턴 다음 단으로 묶어세우는 것을 보았다. 어느 아낙네는 벼를 말리다가 아스팔트 틈사이에 끼어있는 몇알의 벼를 나무 꼬챙이로 패내는 것이였다
그것은 궁상을 떨기 위해서도 아니고 돈때문만도 아니다. 그 행동은 곡식에 대한 애정이요 몸에 밴 마음씨이다.
이제 농촌의 실상을 살펴보자.
얼마전 농촌청년이 장가를 못들어 자살한 두번의 기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장가좀 갑시다』라는 하소연이 우리를 아프게 했다.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성실하게 살지만 농촌에 산다는 것 때문에 장가도 못가고 그래서 자살자가 늘어나고 있고 도시의 비대와는 반대로 낙후 일로로 퇴락하고 있는것이 오늘 농어촌의 대명사요 현실이다
농작물이 풍작이 들거나 가축의 수가 늘어나면 값이 떨어질까 걱정이요 농축산물의 값이 좀 오르면 외국에서 이들을 수입하기에 본전마저 건지기가 힘들다.
특히 채소의 경우는 더욱 심해서 풍작이면 중간상인 배불러지고 대풍이면 똥값도 안돼 밭에 그대로 버려지는가 하면 고추·마늘·깨등 특용작물도 수확이 좋으면 값의 하락으로 영농비 건지기에 바쁘고 작황이 나쁘면 수입으로 골탕을 먹는다.
이러하니 이농현상은 말할 것이 없거니와 실의와 좌절로 인해 정신이상자가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금년도 추곡 수매가를 7~8% 인상할 계획이라 밝혔다. 많은 인상인것 같지만 실은 빈곤을 가속화하는 원인이 될 뿐이다.
원래 낮은 곡가에 예상되는 물가, 타직종의 노임인상, 13%의 공무원봉급인상등 제반여건 때문이다.
이를 중상봉급자와 중상농민의 연수임을 비교하면 쉽게 드러난다. 3천평을 농사짓는 중상농가의 1년쌀 총판매수입을 350만원(쌀50가마×7만원) 중상봉급자의 연봉이 직책수당을 제하고 상여금까지 포함하여 840만원이다. 그런데 봉급자는 자기투자가 없을 뿐아니라, 고정수입이고 농사수입은 인건비·농약대·비료대 등 50%이상의 영농비를 투자해야하고 작황에 따라 감소요인이 있게되는 것이다.
경제의 빈곤, 문화·교육시설의 격차, 고통·주거시설의 불편에다 장가도 가지 못할만큼 인간대접마저 못받는 농촌, 「農者天下之本」이 「農者敗人之본」으로 전락되는 농민, 이를 보고만있어서 되겠는가.
한톨의곡식도 아끼고 농민들에게 대한 감사와 참려로 그들과 함께해야겠다.
도농교회가 자매결연을 맺어서 도시본당신자들이 같은 값이면 농촌본당 농민들의 농산물을 직접 구입하여 중간 마진을 농민들에게주고 품질좋은 농산물을 사먹음으로써 나눔을 실천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일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