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서울대교구 도시빈민사목위원회 간사 양권식 신부(명동본당 보좌)가 최근 도시빈민에 관한 사목적 접근방법을 고찰, 정리한 것이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를 지향하고 있는 이 글은 내년 올림픽을 앞두고 수많은 도시빈민들이 하나 둘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또한 강제철거 시행과 정중 심각한 폭력사태가 발생, 교회가 이에 대해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시기에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받아들여 지고있다.
특히 이글은 지금까지 현장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도시빈민사목의 이론적 배경을 비교적 체계화 시켰다는 측면에서 교회(본당)의 빈민사목 활성화에 상당한 당위성을 부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전체 내용을요약, 上·下2회로 나눠 소개한다.
오늘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삶 전반에서 소외를 겪고 있는 도시빈민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의 처지와 같은 면이 너무나 많다. 2천년전 소외를 겪던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는 오늘날 도시빈민의 처지와 하등 다를 바가 없기에, 성서속의 가난한 이들을 통해 오늘날 빈민들을 발견하고, 오늘날의 도시빈민들을 통해 성서속의 가난한 이들을 이해하게 된다. 강제철거에 의해 갈곳이 없는 철거민은 머리둘곳조차 없는 예수님의 실정을 말해주고 가난은 게으름때문이라는 도시빈민에 관한 비난은 곧 예수님께서 들었던 갈릴래야 출신임을 비난하는 소리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결국 철거민들이 겪고 있는 아픔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독점의식을 고발하고 있으며 철거민들의 수난은 사회적 불의에 대한 저항으로서 총체적인 사회정의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철거민들의 아픔과 수난속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권력과 학식과 재물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 인간성을 견지하고 있다. 도시빈민은 힘이 없으므로 곧잘 권력의 횡포에 곤혹을 겪으며 살지만 권력을 가진자들보다 훨씬 온유하며 많이 배운 사람들에게 속기도 하지만 정직하며, 가진바가 없기에 많이가진자들에게서 업신여김을 당하며 살지만 교활하지않다. 결국 가지지못한 바가 그들의 순수인간성을 지탱해주고 보호해주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며 구조적 가난을 통하여 하느님의 보호를 직접 받고있는 자들이다.
가난이 복되다는 의식은 성서의 기본적 의식이다. 성서속의 가난이란 분명 물질적 빈곤과는 구분되고 있으며 정신적 가난을 강조하고 있다. 빈곤이란 물질과 재물에 얽매여 있는 의식과 삶의 태도를 의미하며 가난이란 물질에 대한 집착과 욕심으로부터 해방된 의식과 삶의 태도를 말한다.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은 곧 가난에로의 해방이며, 진정한 인간화는 물질의 더많은 확보가 아니라 가난의 의식을 각 개인이 누리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종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가난을 부정적으로만 파악하고 못난 것,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것으로만 이해하고, 이해되어져왔다. 이러한 의식의 근저에는 인간을 물질의 소유량에 따라 저울질하는 유물론적 의식이 자리하고 있으며, 가진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한 지배의식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무리 많은 재난을 가졌다 할지라도 모든 것의 가치판단을 물질에 근거해서 혹은 지배를 위한 권력과 능력의 가치척도로 인간을 평가한다는 것은 빈곤층 의식의 발로이며 비인간적인 기준에 순수 인간적인 것을 예속시킨 것이 되고 만다. 이러한 의식은 순수 인간성을 왜곡 내지 오염, 파괴시키는 의식인 것이다. 물질과 권력에 얽매인 구조와 그 구조로부터 파상된 유물론적 지배의식은 인간을 물질과 권력에 의해서 규정하고 억압함에 따라 인간성의 침해를 가져온다.
도시빈민은 자본주의 구조속에서 비롯된 산업화의 침전물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구조속에서의 산업화는 농촌인구의 이농현상을 필연적으로 유도한다. 미국의 식량무기화 정책은 제3세계 국가들의 식량자급도를 낮추면서 경제적 예속을 함께 시도한다. 경제적 예속은 곧 우리나라의 경제를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으로 변화하게 하며 수출주도형 경제는 농촌의 값싼 노동력을 도시로 집중케 하고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덤핑수출정책을 펴 정경유착 현상을 초래한다. 이러한 경제구조 속에서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한 인구를 그 산업경제 규모가 모두 수용하지 못하고 도시의 취약한 지역에 이들 수용되지 못한 이농농민이 자리를 잡고 살게 되는데 이들이 곧 도시빈민이다. 도시빈민은 사람이 살지않는 장소, 하천이나 뚝방 밑에 움막이나 토굴을 짓고 열악한 생활환경속에서 취락한 주거형태를 형성하고 밀집되어 산다.
그들 수준에 맞는 주거형태를 통하여 그들대로의 삶을 영위하고있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그들과 같은 가난한 이웃이 재산이며 그들의 일자리 또한 가난한 이웃을 통하여 얻게되므로, 한곳에 모여 살며 서로 의지하고 그들 나름대로 의식과 문화의 틀을 갖게되는 것이다. 이들이 모여사는 곳은 주로 산동네·꼬방동네와 같이 취락한 주거형태를 이루며 행상·노점상·노가다·파출부·일당노역자·써비스업종사자 등의 직업을 갖고있다. 이와같은 도시빈민들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삶전반에서 소외된자리, 끝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며 존재형태에 있어서는 가장 변두리, 끝자리에 있는 것이며 활동하는 내용에 있어서는 가장 열악한 힘든일, 끝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도시재개발이란 도시기능의 회복과 토지의 합리적 효율적 이용을 위한 사업으로서 취락한 주거지역을 개발하여 쾌적한 주거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개발사업인 것이다. 사업계획에 따라 불량주택을 헐고 새로운 주택을 건설하여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분양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재개발 때문에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해서, 혹은 주택의 개발 때문에 사실은 인간의 생존권이 파괴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 구체적 시행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건물이나 가옥의 소유자들이며 오히려 집한칸 없는 도시빈민 세입자들은 더욱 열악한 조건으로 소외되는 현상을 빚고있다.
즉 건물이나 소유자들을 위한 재개발이므로 그나마 세를 들어서 살던 세입자들은 그 지역에서 철거를 당하게 됨으로 가난한 이들 대로의 생존형태와 문화, 경제적 틀을 상실당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영세 가옥주들 역시 새로 건설된 새로운 주택(17평~40평)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천만원 이상의 입주비를 내야하므로 그능력이 없기에 입주권을 팔고 세입자로 전락하게 되는 현상을 빚어낸다. 더욱이 입주권에 프레미엄이 붙어 건설업체는 엄청난 이득을 보게되고 부동산 투기 등 갖가지 부정들이 야기되는 온상이 된다.
결국 가진자들의 이권만이 확장되고 못가진자들은 그 생존권마저 위협을 받게되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덤핑수출에 의해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던 대기업들의 손해를 메워주기위한 금융특혜의 시도로서 이룩되기도한다. 도시·빈민들이 취락한 변두리지역에 밀집되어 살면 바로 그지역에 지하철·상하수도 등이 가설되고 생활권이 확장되면서 땅값이 오르게 된다. 그러면 그 지역이 정부의 소유지이므로 정부가 건설업체에 이땅을 불하하면 정부는 그 땅값의 폭등에 의한 엄청난 이익을 얻게된다.
이 지역에살던 도시빈민들을 철거하여 빈민들로 하여금 주택지역에 월셋방이라도 얻게함으로써 주택에 대한 수요를 높이고 그 수요가 높아지면 주택의 가격이 상승하게 되므로 아파트를 건설한 대기업은 더욱 높은 수익을 얻게되는 것이다. 결국은 도시빈민들을 이용하여 정부는 수익성 부동산 장사를 하는것이 되고, 대기업은 재개발을 통해 건설장비의 유용과 아울러 부동산 투기를 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경유착의 정책속에서 사유지나 공유지에 무허가주택을 짓고 살던 도시빈민은 철거를 당하게 되며 그들 분수에도 맞지않는 주거형태를 강요당하게되는 것이다. 더욱이 1980년대에 들어 중동지역의 건설기업들이 손해의 폭이 커지자 불량주택 개량과 88년올림픽을 위한 도시미화란 명목으로 강제철거의 폭은 커지고 더욱 잔인해지는 현실속에서 무력한 도시빈민은 놓여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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