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나 다 정한 「때」가 있다.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나 다 때가 있다』(전도서3, 1).
이것은 세상의 온갖 좋은 것과 나쁜 것 선한 것과 사악한 것을 골고루 경험한 현자의 입을 통해서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그때를 분별하지 못하거나, 앞당기거나 늦추고 싶어하는데서 오는 갈등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모든일「때」가 있어
최근 필리핀의「피흐름 없는 평화적 정권교체」를 보면서「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3월 23일자 가돌릭신문 6면에 예수성심전교수녀회 에델깃드 수녀님이 필리핀에서 이번에 체험한 것을 쓴 편지가 실렸다.
『라모스가 텔레비전 방송국을 점령한 다음 소식을 보낼 때마다 항상 파티마의 성모상을 옆에 두고 했습니다』란 대목을 읽으면서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을 향해 감사기도를 드리며 잠시 생각해본 것이다.
나자렛 성모님은 예수님의「때」를 분별하시기까지 많은 것을 겪으며 가슴에 담고 침묵 중에 명상하셨던 것을 복음에서 엿볼 수 있다. 열두살의 어린 예수님이 성전에 홀로 남아서 종교적, 정치적 지도급인 바리사이파 학자들과 토론을 하고 계시리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사흘간이나 헤매며 찾으셨고 찾으신 후에는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고 나무라시다가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하는 뜻밖의반문을 받으시고는 조용히 마음 속에 간직하며 뜻을 새기셨다.
예수께서 공직생활을 시작 하신 후 어느날「가나」의 혼인잔치에 성모님도 함께 가셨다. 그 집에 술이 떨어진 것을 눈치 챈 성모님은 예수께 그것을 알려드렸는데 예수께서는『여인이여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부정적 응답을 하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성모님께서 단호하게 뜻을 굽히지 않으시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대로 하라』고 하인들에게 명하셨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끝내 당신의「때」를 앞당겨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신 것이다.
◆필리핀 교회가 걸은 길
구원의 결정적 승리가 선포되는 그「때」에 십자가 밑에 서 계시며 끝내는 그 아드님에게서 『연인이여, 이 사람이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하시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 대신 그의 제자를 아들로 받으심으로써 우리 모든 믿는이의 어머니, 아니 온 인류의 어머니가 되셨고 오늘도 인류의 구원을 위해 눈물로 회개를 호소하고 계시는 것이다.
필리핀의 교회가 걸은 길에도 성모님과 아드님의 경우와 흡사한 면이 있음을 본다. 1970년대에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중에서 예언적 사명을 느끼며 사회정의 구현에 앞장서 일하다가 잡히고 감옥에 갇히는 고통을 당할 때 일부 교회 어른들은 못마땅해 하며 성모님처럼 『왜 우리들의 애를 태우느냐?』는 식으로 꾸짖던 시대가 있었다.
그래서 정의구현에 몸바쳤던 성직자 수도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종종 들으며 마음 아파했었다. 이제 그 교회가 하느님께서 뜻하시는「때」를 분별하고「평화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적시에 하도록 필리핀의 성모님께서 도우신 것이다.
◆교회병폐부터 고쳐야
사실 나도 어떤때는 수녀로서 필리핀 수녀들은 가끔 지나친 것이 아닌가 속으로 판단했던 것이 뉘우쳐진다.그들은 사랑하던 공동체에서 비난받고 어려움을 무릅쓰고 사명의식을 잃지 않았다.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바라며 따르는 것 밖에 다른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것은 정녕 온갖 고뇌를 뛰어 넘는 올리브 산의 기도같은 기도의 열매였을 것이며 확고한 믿음에서 나오는 순교자의 용기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이웃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가슴 깊이 메아리쳐와서 달려가 용서를 청하고 싶은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다.
그들의 어머니인 필리핀 교회는이제 십자가 밑에 서 계셨던 성모님처럼 온 국민을 품에 받아 지금까지 누적되어온 온갖 아픈 상처를 씻어주고 위로하며 사회의 구석구석에 깔린 어두움을 복음의 빛으로 밝히는 그몫을 해야할 막중한 소명을 새로이 받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 자신의 무수한 내면적 병폐를 앞장서 고치면서 이 막중한 소명을 다하지 못한다면 되돌아올 악의 세력은 몇배나 더 클것이니 이제부터가 더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 부부와 자녀, 기성세대와 젊은세대, 정부와 민주인사들 사이에 진리, 정의 평화 등의 문제를 놓고 많은 갈등 속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투옥되고 고통을 겪은 우리 사회의 상처받은 역사에서 함께 신음하는 교회는 하느님께서 뜻하시는「때」를 분별하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 지혜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과 예수님, 그리고 필리핀의 교회와 그의 자녀들 사이에서처럼 고통스런 갈등을 체험하는 동안에 십자가 길을 함께 걸으면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디까지 와있으며 구원의「때」는 언제쯤일까? 한국의 성모님께 매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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