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김안나 할머니는 8남매(남6 여2)를 다산(多産)한 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엄비오는 알뜰한 청년운동가로 투옥도 되고 부정과 싸우고 정의와 타협하는 바른 생활을 해왔고. 교육의 후원과「해바가리」농장 관리로 착실하게 빛을 일게 하면서 천주교 선교사업에 몸을 다한 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형적 평화는 있었지만 안으로는 가정의 부부애는 행복하지만 않았다. 그것은 특수한 김안나 할머니의 성격 탓이라할까, 겉과 속이 다른 괴팍스런 노인이라 할까, 아마도 자기 본위의 에고이즘적 고집그런 관습이 찌든분이라 표현해서 예의에 빠뜨린 표현인지 모르겠다. 가정을 지키면서도 자기 중심적 생활이고 보니 부군과 친족과 이웃은 어떻게 되든 관계치 않는 외톨이요, 고독의 연속인 불행한 여인인지도 모른다. 외로움은 본인이 만드는법, 책임전가는 이치에 어긋난다. 고독은 씨앗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고독에서 오는 의식의 세계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눈앞의 생활을 형식과 가식이며 마음은 콩밭에 있다고 할때 그 얼마나 어줍잖은 일인가. 그래서 한의 맺힘이 가슴 깊숙이 자리 하고 있어 고희의 백발에도 그버릇이 쌓이고 싹이 돋고 꽃이 피어 이제는 변질감이 없는 고독의 연속에서 고독으로 타게하고 말았다.
모둠살이의 철학을 깨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김안나 할머니가 더욱 안타깝기만 한다.
독실한 천주교신자, 그는 울고 웃고 신앙으로 노력했다. 그는 운명에 허덕이는 시골성당을 찾아서 성수대(곱돌 2점)를 남모르게 기증하고, 허술한 제대를 다시 새 것으로 갈아모시고, 때로는 선풍기를 설치해주어 기도에 보탬을 주는 장한 선교의 봉사자이기도 하다. 가까운 벗 코스코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성격이 쾌활하며 매사에 쏘아붙이는 매서운 면도 있으면서 군림하는 자세로 우애가 두터웠다』고 한다.
또한 손재주가 있어 뜨개질로 겨울 덧저고리를 쩔어서 선물도 하고. 신부님 수녀님께도 따뜻한 털조끼를 만들어 봉사자로 사랑을 나눈 겸허하게 살아온 이웃의 말은 이제 이야기로 모범되게 오래도록 남는 일이기도 하다.
이모든 봉사비는 아들ㆍ며느리로부터 받은 용돈을 덜쓰고 활용했다니 이어찌 고운 일이 아닌가. 아들(엄시몬)과 모든 식구들은 이제야 알게되어 더욱 마음 아파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의 전통적 가계의 흐름을 지적하자면 고부지간의 갈등이다. 김안나 할머니의 성격으로 보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며느리 권세레피아는 엄시몬과 결혼초부터 돈 많은 가정의 며느리를 맞이하지 못한데서 온 갈등은 심히 깊게 파이고 아들 딸이 고등학교를 툭하면 과거를 들추어 한마디씩 쏟는다.
엄시몬이 의대를 졸업하고 성모병원 보건소 등을 무보수로 전전하고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 처가의 협조와 가까운 친구들의 힘으로 병원을 짓게 되었을때『얘야, 그때<결혼초>병원을 지어 줄 터이니 결혼하자는 사람과 인연을 맺었다면 이 고생은 없을게 아니냐?』하는 뼈맺힌 말을 서슴없이 뇌까리는 웃지못할 사실이고 보면 며느리 권세레피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살이 저며오는 고통이 있을 것이며 사람인지라 감정이 앞서서 멸시와 존경심은 땅에 떨어졌을 것이다.
신앙인으로 어찌 저럴까, 십자가 앞에서 무엇이라고 고백하며, 성체 앞에 조아리며 무엇을 달랬을까, 참으로 딱한 심삼을 알고도 남는다. 권세레피아와 업시몬의 사랑은 미혼 때부터 지금까지 긴 회억과 깊은 뜨거운 부부애는 너무도 컸다. 가까이는 기도의 성실함과 밖으로는 엄시몬의 신앙생활에서의 쌓은 공적은 구교우의 후손으로 모범을보여 왔으며, 아마도 천국의 보화는 가득하리라. 그는 지금도 신앙 현장에서 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변화가 왔다. 진정코 자기인「나」를 찾은 것이다. 김안나 할머니는 천둥이 울고 번개가 일때 당신이 당신으로 인해 아무도 없는 외로움으로 쓸쓸하게 입종을 했다. 뜻 밖의 죽음으로 한마디의 말도 유언도 없는 조용한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폭포수 같은 울음이 있었다. 삶과 죽음, 이것은 한치의 차이인가 그러나 그 세계는 너무도 동떨어진 먼 거리였다.
살아서의 말로 당신의 뜻과 외롤움을 이야기로 풀고 가셨다면 남은 생명들은 기도의 아픔으로 달래나 보겠지만…. 이제 하고 싶은 말은 어디에다 쏟을까, 불쌍하기 그지 없는 할머니의 종말, 오직 천국귀의의 기도뿐인가. 엄시몬과 권세레피아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세상의 입과 눈을 무엇으로 방패하란 말인가. 그것은 억울한 것, 죽음은 말이 없는 것, 천작(天作)은 막을 길이 없으니 천작(天爵)으로 이끌면서 이제는 오점이 없는 아름다움으로 이끌뿐이다.
백합회(연도위주의 모임체)는 김안나의 영혼에 대한 연도는 한이 없는 뜨거운 기도를 늦도록 올렸다. 시내 14개 본당에 연미사를 의뢰했으며 이제는 착한 마음으로 한이 서린 마음을 풀고 꽃수레에 실리기를 빈다.
고부지간의 사이는 실로 풀자색실로 할까 노랑실로 할까.
짧은 인생, 웃고, 사랑하고, 기도로 그리스도의 뜻은 풀까. 이는 그리스도의 바램이 아닌가.
나도 나이들면 서글퍼지는 것을-.
지금은 며느님도 아드님도 이웃과 같이 질책하지말고 사랑하자.
이는 십자가의 길이요. 사랑과 고통의 보답이 아닐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