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4월17일
군종신부의 첫 생활이 훈련소에서 시작 되었다. 사제 서품을 받고 서울에서 사목하다가 특수사목을 맡으니 모두가 낯설고 육체적인 어려움과 함께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지루함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날 K주교님으로 부터 편지가 왔다.
『허신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의미를 찾은 막시밀리안꼴베 신부님을 묵상해 보십시오. 삶의 의미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찾는 것이오』.
군생활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던 나는 K주교님의 따뜻한 격려의 편지를 받은 후 마치 망망한 대해에서 등대를 만나듯 내게 커다란 위로와 힘이 되었다.
오늘날 전화 발달로 편지왕래가 드물어 지고 있다. 그것은 먼거리 일지라도 손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소식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따뜻한 마음과 마음은 결핍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통화를 할 때 마다 번번이 느끼게 된다. 말로써 전달하기 어려운 것도 글로써는 정확하고 확실하게 전해 지게된다. 그것은 펜을 잡으면서 자신을 정리하게 된 후 한자 한자 옮겨 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기에 더더욱 편지는 정감을 불러일으키게 되는게 아닐까 싶다.
힘든 유격훈련을 마치고 내무반에 들어오니 편지 한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소중히 아끼는 친구 L신부 H신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기본소명을 저버리는 것같아 이곳을 떠나는 내마음은 이겨야 한다는 당위성을 찾기 이전에 견디지 못하였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네. 무엇보다 나를 가슴 아프게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있지 못한는 것, 같이 웃고 같이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네』. 불의의 사고로 허리를 다친 동료사제가 훈련소를 떠나면서 남겨놓은 것이었다. 이 편지를 보면서 그동안 심적인 고통이 얼마나 컸는가를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그리곤 친구의 몫까지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였다.
편지에는 여러가지 내용이있다. 애락을 담은 편지가 있는가 하면 상대방에게 삶의 생기를 북돋아주는 희망의 편지도 있다.
신설본당이라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 있는 나에게 얼마전에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계시는 선배 신부님이 편지를 보내주었다.『일년 먼저 제대한 후 다시 논산 훈련소보다 더 힘든 훈련소에 와서 방위보다도 낮은 계급으로 수련에 입하고 있다네. 이곳은… 참으로 복된 곳임을 느끼면서… 동시에 참으로 힘든 곳임을 느낀다네. 어려움이 클 수록 그만큼 은총이 큰 것임을 느끼며, 그동안 소음과 세속에 젖어서 보고 느끼지 못하던것을 수련을 통해 눈이 조금 떠져서 하느님의 사랑을 조금씩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네』.오랜만에 반가운 편지를 받은 후 나는 왜인지 모르게 무척이나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마 사목활동에 적잖이 어려움을 갖고 갈등을 하고있었던 탓이리라.
편지는 소식 전달만을 하는 수단은 아니라고 본다. 사도 바오로께서 당시 수많은 외교인들을 편지로서 하느님을 알게 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 줌으로써 그들의 가치관과 생활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했음을 상기해볼 때 현대를 사는 우리는 편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될 것 같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