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기는 금년 내로 끝을 맺어야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법에 따라서 개헌도 해야 하고 지금 할 때가 아니라 89년에 가서 하는 것이 옳다 하고들 맞서고 있다.
그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가 없다.
어린이가 다섯 살이 되면 국민학교에 입학시켜 교육하는데 좋다고 하는가 하면 다섯 살이면 너무 어리다고 한다.
어느 편이 옳은지 단언하기 어렵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 밥을 적게 먹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구미대로 먹고 운동을 함으로써 체중조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 순간「선택」하는 존재
하나에서 열까지 매사에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인간은 순간순간 선택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든지, 뒷걸음질을 하든지 기로에서 움직이는 존재이다.
선택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될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면 될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선택을 하지 않고 무관심 상태로 있다 해서 우리와 함께 하는 시간이 머무는 것이 아니고 계속 흘러가며 가만히 있는 것 자체는 곧 후퇴를 말한다.
페인트 칠을 하고 가만히 두었을 때 퇴색해 버리는 것과 같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반드시 자유를 지닌다.
그리고 이 자유는 각자 자기 자신이나 어떤 대상에게 맡기고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
자유는 자기가 가지고 감상하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에게 구경시키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사람은 각자 지니고 태어난 자유를 무엇을 위해서 맡기고 살아간다.
대중의 여론을 믿고 사랑하면 바로 그 대중에게 자유를 판 것이고 권력과 돈만이 믿을 수 있는 가치라고 생각할 때 거기에 자유를 맡기게 될 것이며 유행과 인기 그리고 술과 섹스가 최고의 가치라고 여길 때 그곳에 자유를 팔고 술과 섹스의 노예가 될 것이다.
실제 오늘날 많은 이들이 시간 속에 흘러가는 부질없는 것에 자기의 자유를 팔고 그 노예가 되어 한 평생을 보내는지 않는가?
◆그 무엇에 맡기는 자유
그러면 진정한 의미의 자유란 무엇일까? 여기에 세 가지의 정의를 내릴 수가 있다.
첫째, 본능의 욕구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한다. 이는 자유주의자들의 해석이다. 물론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돌멩이를 던져 이웃집 유리창을 깰 수도 있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뒤통수를 보고 돌팔매질을 할 수도 있다. 신호대의 빨강불을 보고도 그냥 달리는 차를 볼 수 있으며 버스의 의자시트를 심심하다 하여 칼로 그어 버릴 수도 있다.
만약 모두가 이런식의 자유를 구사하다면 질서가 무너지고 혼돈의 상태가 되어버릴 것이다.
법을 무시하면서 본능의 욕구에 따라 자유를 구사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혼돈되게 마련이다.
옳은 것은 해야 하고 옳지 못한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원칙을 따르면 욕구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무시해 버린다.
선을 그을 때 바르게 긋기 위해서는 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 자(尺)조차 부인해 버린다. 본능의 욕구대로「하고 싶은 것」이 최고의 가치이고 이것을 위해서 자유를 맡기고 노예가 되는 것이다.
둘째, 자유는 필연적으로 따라야 할 것을 따라가는 권리라고 한다.
이와 같은 해석은 전체주의 사상에서 나온 설명이다. 즉 전체를 위해서 개인을 희생 시켜도 좋고 개인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공산주의 사상이다.
칼맑스가 말하기를『돌이 만유인력에 의해서 땅에 떨어지는 원리가 있듯이 인간은 공산주의의 법을 따르게 되어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회에서만 참된 자유를 지난다.』고 했다. 이 이론에서의 인간의 자유란, 바로 공산독재사회의 노예화를 지칭하는 것이다.
셋째, 진리와 사랑의 법칙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고 설명한다.
참됨과 거짓 가운데서 참된 것을 선택하는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알지 못하고서는 자유를 행사할 수 없다. 즉 자동차를 어떻게 모는지 알지 못하고서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자유가 없으며 노래를 부를 줄 모르면 노래 부르는 자유 역시 없다.
왜 지금 이렇게 하는지 목적에 대한 의식이 없으면 행동을 취할 자유는 없는 것이다.
◆절대적 진리는 확신 줘
시시각각 우리에게 제시되는 사실을 판단하고 선택할려면 확신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확신은 실수와 오류가 없는 절대적인 진리에 의해서 정립이 된다.
인간의 주의주장이나 이념은 언제나 실수의 가능성이 있고 항상 믿을 수만은 없다.
자유를 완전무결하게 행사 할 수 있는 분은 바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진리가 너희들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기의 자유를 어디에나 맡기고 누구의 노예가 되느냐 하는 숙명적인 과제를 안고 태어난다.
『나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신 그리스도께 자유를 맡기고 그의 노예가 되는 것이 가장 자유를 올바르게 쓸 수 있는 지혜로운 선택이라 하겠다.
인간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참된 노예가 되기 위해서 오늘도 자유를 부르짖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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