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영동지방에서 있었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구정을 지내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산을 넘어 큰댁을 가다가 술이 몹시 취해 있었던 아버지가 쓰러졌다. 국민학생인 어린 아들은 살을 에 일 듯 한 모진 바람과 눈이 쏟아지는 깊은 밤에 잠바를 벗어서 아버지를 덮어드렸다. 그리곤 아버지와 함께 그냥 그대로 싸늘하게 얼어서 굳어있었다. 밤새도록 내린 눈은 그들을 덮어 마치 눈 무덤을 만들어 놓았다.
유교사상에 젖어있던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효는 으뜸가는 덕목이며, 모든 행실의 기초로 삼아왔다. 대가족 제도에서 오늘날 핵가족 제도로 변모되면서 부모에 대한 효도가 많은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탓인지, 만취한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아랑곳 하지 않고 효성스러움을 보여준 그 어린 학생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요즈음 우리는 핵가족이란 말을 자연스레 사용한다. 그 말은 평화스런 의미보다는 파괴적이며 공포의 의미가 더 강하다. 예컨대 핵미사일, 핵전쟁 등 무서운 단어와 함께 사용되고 있다. 우리말 사전을 보면 핵가족이란 대가족에 상대되는 말로서 부부와 그 자녀들만으로 구성되는 소가족을 의미한다. 이 말이 유행하는 것은 자식이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아름다운 우리의 풍속이 차츰 사라져가는 단면이 아닌지…
얼마 전에 매일 미사를 열심히 다니시던 할머니가 사제관을 찾아오셨다. 『신부님 몇 달 동안 아들 집에 있었는데 며느리가 가끔씩 때리고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아서 딸네 집으로 가려고 교적을 뗄겸, 신부님에게 인사하러 왔습니다.』하시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할머니, 혹시라도 며느리에게 잘못한 것이 있지 않으실까요?』하고 물었다. 할머니는 빈 집을 지켰다는 죄뿐이 없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일어셨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사시는지 그때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 지질 않는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온갖 정성을 기울이며 댓가 없는 희생을 하셨으리라. 역사적으로도 일제 억압과 전쟁을 겪으면서 굶주림과 억압, 수모를 받아야 했던 불행한 세대였다. 부모님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병이 났을 때 부모님은 더 아프셨고, 우리가 상처 받을 때 더 상처를 받으신 분들이다.
정 철은 송강가사에서 『어버이 살아 실 제 섬김일랑 다 하여라/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 하리/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 뿐인가 하노라』라고 인생살이 유한을 노래하고 있다. 살아계신 부모님에게 더욱 더 관심을 갖고 남은 여생동안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드려야겠다. 만약 부모님의 존재에 대해 귀찮게 여기고 박대한다면 그 사람도 머지않아 똑같이 자기 자식에게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오는 5월 8일 어버이 날에는 부모님에게 정성어린 꽃다발과 사랑과 존경을 마음껏 안겨드려야 하겠다.『제 아비를 비웃고 어미를 깔보는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의 밥이 되리라』(잠언30, 17).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