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마침「빠리」에 있었기 때문에 저 유명한「노뜨르ㆍ담」성당에 자시미사 참례를 갔었다. 그것은 전세기 말에 포올ㆍ끌로델이세의 어린 나이로 신앙을 상실하고 퇴폐적인 문학사조에 빠져 있으면서 무엇인가 작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 있을까 하고 자정미사에 갔던 일과는 사정이 다르다.
내가「빠리」에 도착하던 다음날 K 신부가 나를 이 성당에로 안내했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내 눈을 의심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이 아름다운 꼬딕성당을 더욱 가까이 보고 그 속에 안기기 위해서 성탄 밤에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밤 11시도 채 못 되었을 무렵인데 이미 교통순경이 차 통행을 제한하고 있어서 접근하기 어렵고 정차해둘 곳을 얻을 수가 없어서 별도리 없이 자정미사는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이 꼬딕성당의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할 능력이 없다. 또 너무도 유명한 것이니 이제 새삼스럽게 감탄하는 것이 히려 민망스러운 일이다. 나는 신앙을 상실한 것도 아니고 젊은 나이도 아니건만 오래 전부터 무슨 까닭에 고색창연한 꼬딕성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치솟는 마천루의 숲 속에서 폐물 같은 존재가 된 것인가 하는 것을 골돌히 생각해왔다. 그리고 어떠한 용기를 가져야 이러한 막다른 골목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절실한 문제를 그대로 덮어둘 수 없었다.
이것은 현대의 물질문명의 죄악상을 아무리 논리적으로 공박해 보아도 안 될 것 같고 그리스도교적인 애덕을 아무리 강조해 보아도 가망이 없을 것 같으며 삼종이 울릴 때마다 하루 세 번 열심히 성모께 기도를 해보아도 이 삼종 소리가 결코 중세기의 도시나 농촌에서와 같이 현대 사회의 시민과 농민들의 생활을 지배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라는 것을 더욱 확실히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본시 나는 현대 세계에 있어서 지구상에서의 여행이라는 것은 이미 끝난 것이고 그저 다만 관광객들의 수효만 늘어갈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행이란 결국은 순례적인 뜻을 가진 것이겠고 관광은 결국 행락적인 뜻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기 때문이다.
나는 관광에 흥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과거 지향적인 인간관 문화관 종교관의 결함을 하루 바삐 극복하고 나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마음이 다져질 대로 다져져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떻게 하면 이 궁지를 벗어날 수가 있을까 하는 눈으로 모든 것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노뜨르ㆍ담성당을 내 눈으로 보기 이전에 알고 있었다. 사진으로 그림으로 미술사를 통해서 하다못해 관광 포스터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꼬딕 건축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중세철학사에도 꼬딕성당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나 자신도 스콜라철학과 꼬딕성당을 비교하는 얘기를 강의 시간에 오래 전부터 해왔다. 그런데 웬일일까. 다른 모든 것들은 사진보다 상상보다 훨씬 못한 것이 보통인데 이 성당만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보석 같이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는 또 다시 적진의 한복판이다. 세기의 대시인이 될 18세 청년 포올ㆍ끌로멜은 전세기 말에 적진을 탈출하여 이 성당에서 상실했던 빛을 발견했고 은신처를 얻었다. 하지만 20세기의 후반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 졸병들은 용장들이 넘겨준 신앙을 아직은 위축된 자세로나마 움켜쥐고 있으나 그것을 다음 세대에 몰려주고 모든 사람의 빛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군이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이 성당을 어떻게 하면 탈출할 수 있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이처럼 아름다운 성당 노뜨르ㆍ담을 두고 탈출해야 하다니 그것이 웬말이냐 하고 묻는 이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김수창 신부님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박갑성 교수님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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