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되도록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말, 또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의 출판물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읽는 것」자체에 뜻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게 되고 어떠한 정신생활을 할 수 있고 하게 되느냐는 것이 보다 실질적인 문제이다. 출판물에 관한 우리의 관심은 차라리 이러한 각도에서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즉 우리는 책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 자세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반성하게 되었으며, 무엇을 깨달았으며, 어떤 문제를 토론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볼 일이다. 그리하여 책을 읽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생기고, 그 화제에서 소회되지 않고 끼어들 수 있는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이 의미있는 일일 것 같다.
근래 우리 가톨릭 출판가에 나와 있는 책들이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어떤 새삼스런 깨달음이라든가 화제가 될 만한 것들을 단편적으로나마 더듬어보고, 이 내용들이 어느 책에 들어 있는지를 독자들이 상기해봄으로써, 우리의 신앙생활과 책과의 일일 것 같다.
우리가 책으로부터 신앙의 영양소를 섭취하지도 않고, 타성적으로 나태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 어느덧 자신이 점점 불신앙에 빠져들어가는 예가 종종 있을 것이다. 이럴 때의 불신앙은 그것이 공개적이고 반항적인 불신앙이라면 오히려 나은 편이다. 이와는 달리 거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신앙 상실이며 하나의 조용한 이탈, 침묵하는 무관심인 경우가 있다. 이것은 종교적 신앙 없이도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인간들의 마음 속에서 서서히 성숙되고 있는 하나의 불신앙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불신앙이 생기는 것은 신앙인에게 있어서 절망적인 불행일까. 그렇지가 않다. 그렇지가 않다는 점을 아는 데서부터 오히려 현대인의 신앙을 재건하는 길이 열린다. 빠스카 신비에 결합되어 벅차오르는 희망을 품고 부활을 향해 전진하는 것은 비단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는 은총을 마음에 지니고 있는 모든 선의의 인간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고 인간이 불린 궁극 목적도 사실은 하나뿐이며 그것이 신적인 것이므로 성령께서는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빠스카 신비에 참여할 가능성을 주신다고 믿어야 한다. 인간의 신비는 이와 같이 위대한 것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교 계시가 믿는 이들에게 주는 진리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신자들만이 구원을 얻기 때문에 그리스도 신자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신자인 것은 역사를 위해서 그리스도적 봉사(Diakonia)가 의의를 지녔고 또 필요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온통 하느님의 것인 세상으로부터 소외시켜 교회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그리스도교를 신화적이고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저인 질곡으로부터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신론 신학자들의 주장까지도 귀담아 들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필립보인들에게 보낸 사도 바오로의 편지에 나오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것을 모두 버리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셨다. 마치 그러한 행위와도 같이 교회는 한 차례 자기를 버리고 자신을 공허화하는 결단마저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교회의 이러한 자기 공허화는 맹목적인 소멸이 아니고 발전적인 애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교회는 자기 가슴을 열고 세속 안으로 들어가되 마치 누룩이 밀가루 안에 들어가 빵을 부풀리고 술을 만들 듯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스도 교회에 미래가 있다면 자신을 가난하게 하고 교회 안의 사람들보다 교회 밖의 사람들을 더 사랑하는 데서만 가능하다. 그리하여 교회는 온세상을 품에 안고 인간 본성ㆍ양심ㆍ자유ㆍ정의ㆍ평화ㆍ공동선 등의 개념을 사회적으로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위에서 제기한 신앙의 자세 문제는 아마도 현대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의 필요ㆍ불필요를 판가름하게 할 수도 있을 만큼 예민한 문제의식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폐쇄적이고 전문적인 학문에만 의거하는 것도 아니고 감각적이고 무책임한 저널리즘에 의거하는 것도 아니며 오늘날 가톨릭 교회에서 발간하는 다양한 대중적 신심서들을 통해서 제기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근래 가톨릭 신간서들을 두루 읽음으로써 대화와 토론을 가지면서 우리의 신앙을 보다 살찌우고 건강하게 성장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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