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아제한을 목젖 터지듯 강조하던 시대에 출생한 세대. 그래서 성소감소를 우려하던 과거의 걱정이 선각자의 걱정처럼 느껴졌지만 그것이 결국 신(神)의 섭리를 이해치 못하는 우매함이라는 사실이 현실로 증명된 것 같다.
50명의 부제서품, 30명의 사제서품. 대식구가 생긴다는 기쁨에 조금 선배일 뿐인 선배 사제로써의 감격은 동요(動搖) 그 자체였다. 하지만 교구 서품식이 장충체육관에서 거행된다는 공문을 읽으면서 며칠을 생각해보았다. 교구의 주교좌 성당이 협소하여 체육관을 사용한다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웬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질 않는 것이다.
그곳은「체육관 대통령」이 탄생한 자리요, 어떤 의미에서 평가하든 육체의 아름다움을 겨누고자 미녀(美女)들이 꿈틀대며 치른 선발대회가 거행된 자리요, 정권을 위한 아첨꾼들이 모여 거수기를 들며 결의대회를 거행한 자리요, 관제동원되어 숱한 구호를 외치는 각종 행사를 치른 자리요, 등등… 왠지 그러한 기억들이 긍정적인 인식을 계속 방해할 뿐이다.
하기야 건물과 장소, 그자체가 성(聖)스러움과 성(聖)스럽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안에서 행하여지는 내용 그 자체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라는 점과 오히려 이런 전례행사를 통해서 기존 인식에 대한 새로운 가치부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진정 전례 거행의 취지를 살릴 수 있으면서도 행사 진행의 어려움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적지(適地)는 과연 없는 것일까?
수천명이 넘는 졸업자와 가족, 친구들로 몇 만명이 넘는 대학의 졸업식장. 그들도 같은 2월 추운 겨울에 아무런 거부 반응 없이 야외운동장에 모여 긴 행사를 치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사제가 양성되는 교회의 심장인 신학교 넓은 교정에서 고행과 극기의 대명사로 인식될 사제들과 교인(敎人)들의 전례행사는 과연 무리한 것일까. 왠지 나는 정든 교정, 신학교 마당에 엎드려 서품을 받고 그리고 서품식을 지켜보며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나는 소명을 받아 체육관에서 서품식의 진행을 맡은 사제이다. 하기야 순명과 소견은 조화롭게 병행되어야 할 사제의 품성(品性)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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