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옷깃을 여미어도 깊숙이 파고드는 늦 가을 찬바람은 막을길이 없다. 하루밤사이 뚝떨어진 수은 주의 눈금이 가뜩이나 삭막하고 헐벗은 마음을 처량하게 울려줄 뿐이다. 기온이 아래로 곤두박질한다 한들 등 따뜻하고 배부른 사람들에겐 그리 큰 문제가 되지않는다. 절제를 잃어버린 계절의 바뀜속에서 오히려 낭만적인 분의기조차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등 따숩고 배부른 사람들이나 하더라도 명동의 빌딩숲 한가운데 자리하고있는 천막촌의 행렬을 아무런 감각없이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명동성당 구역내에 어색한 모습으로 펼쳐져있는 천막촌의 을씨년스러운 정경은 이미 6개월째를 넘어서고 있으나 해결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상계동 철거당시 강제철거에 맞서다 거리로 내몰린 80여세대의 철거민들이 임시 상활터전으로 자리잡았던 명동성당구역에는 현재 35세대 1백여명이 안간힘을쓰며 버티고있다. 마치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보여주기라도하듯 처연한 모습의 명동 천막촌은 겨울이 이미 코앞에 와있는데도 도무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고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천막촌 주민들이 이주할 새 터전이 곧 마련된다 하기도 하고, 협상이 결렬됐다 하기도하고, 아직 감을 잡을수가 없다. 누가 누구와 협상을 하고있는지 정확히 표현할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 협상의 주인공은 철거민들이라는 점이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답답한 것은 교회 당국도 아닌 바로 그들 자신이라는 얘기다.
여름 내내 작열하는 따가운 햇볕속에서, 짜증스러울만큼 잦고 난폭했던 폭풍우속에 천막하나로 몸을 가린채 잠을 청해야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천막촌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안됐다』에서 부터 『빨리 무슨 대책이 있어야겠다』라는 것은 천막촌을 지나칠 때마다 열외의 사람들이 느낄수 있는 단편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찬바람 몰아 치는 겨울 혹한속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감정이 무디어졌다한들 그리 쉬운 일은 아닐것이다.
그 노릇은 교회도, 관계당국도, 천막촌주민 자신들조차도 피해야한다. 누차 강조되어 왔지만 명동 천막촌은 그 하나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정비례하면서 발전하고 확대된 것이 바로 철거민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30여년간 중앙집권적인 정치권력구조, 대도시 중심적인 사회 및 경제구조가 뿌리를 내리는 동안 도시 행정은 철거행정으로 대변될 만큼 도시빈민, 철거민 문제는 반복되어 왔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상계동에서, 신당동에서, 사당동에서, 창신동에서 또 그밖의 다수 지역에서 철거대상이 도시빈민과 철거반원들의 싸움은 쉴사이 없이 이어지고 있지 않는가. 도시개발과 환경미화가 인간의 생존권을 근본적으로 박탈하면서까지 이루어져야 하는 우리의 현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올해는 유엔이 제정한「무주택자의 해」이다. 무주택자의 해를 정한 것은 아직 이 세상 곳곳에 집없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는 실상을 입증하고 있다. 유엔의 이름으로 모든 국가들이 집없는 이들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자는 이취지는 한국의 실정상 시의적절한 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변함없이 겪어야하는 현실은 엄청난 주택난과 도시빈민들의 떠돌이 삶, 그리고 때려부수고 다시 짓은 천막춘의 비애일뿐이다. 최근 불붙듯 일고있는 이른바 1盧 3金의 공약전생 가운데 도시빈민, 철거민문제가 여기저기 언급되고 있음은 언뜻보기에도 다행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그 다행스러움 가운데서도 한가지 분명한 의문은 도시빈민, 철거민문제가 어제 오늘위 문제가 아닐진대 어째서 지금까지 보고만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동안 여권은 물론이려니와 야권에서조차 도시빈민과 철거민들을 돕기위한 노력이 두드러졌다고는 결코 단언할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우스갯말로 이번 선거를 위한 공약으로 아껴둔 것이 아니라면 도시빈민과 철거민에 관한 이들 정치권의 큰소리는 여타 화려한 공약(公約)들과 함께 단지 하나의 공약(空約)으로 남을 소지는 너무나 분명한듯 싶다.
현재 대권을 향해 뛰고있는 대통령 후보들이 보란듯이 내놓고있는 갖가지 공약들을 살펴보면 그 공약들이 내포하고 있는 화려함과 파격성, 그리고 비현실성은 오히려 공약의 신뢰성과 신빙성을 강소시키는듯한 인상이 짙음은 어쩔수 없는 사실이다. 정치권의 일은 그렇다치고 교회는 과연 어떤 입장으로 철거민들을 대하고있는가. 언젠가도 지적한바 있지만 교회가 사회제반일에 해결사일 수는 없다. 문제가 방생할때마다 사건이 터질때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개입할수 밖에 없었던 여건이 어쩔 수 없이 해결사 또는 장소제공자의 모습으로 비쳐질 수는 있었어도 교회는 결코 해결사일수는 없다.
약한이들의 대변자ㆍ옹호자로서 교회의 역할은 말할수 없이 중요하지만 문제해결을 위한 직접개입에는 한계성은 최근 명동 철거민문제 등에서 쉽게 발견할수 있다. 남의 일 봐주려거든 3년을 봐주라는 옛말처럼 남지않고 보이지않는 정성과 성의가 필요하다.
교회는 교회가 이미 개입한 명동철거민들의 현실을 이젠 더 이상 미룰수 없음을 직시해야한다.「남의 일」이 아닌 「내일」로써,「베품」이 아닌 「나눔」으로써 이미 내디딘 발걸음을 마무리 지어야한다. 겨울이 바로 눈앞에 다가서지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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