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재의 수요일에 듣는 복음 말씀은 자선이나 단식을 남에게 드러나게 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 있다. (마태 6ㆍ1~6ㆍ16~18) 단식은 희생과 보속을 의미하고 자선은 사랑을 베풀라는 뜻임은 물론이다.
여기서 사순절의 본뜻이 희생과 보속을 행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고 또 이를 남이 알게끔 과장하거나 자랑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하라는 경고의 말씀으로 알아들어야겠다. 그런데 우리는 희생도 자선도 싫어하거나 또 하더라도 외부에 드러나게 남이 알도록 하려고 애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정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만큼 겸손되이 또 조용히 희생과 자선을 행할 수 있도록 수련되어야 하겠다.
사순절은 또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체험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수난하시고 죽으시는 대가를 치루시고 부활의 성과를 거두신 것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화해를 이룩하는 그리스도의 빠스카의 신비인 것이다. 우리도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고난과 죽음의 신비에 참여함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순절을 올바르게 생활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우리 자신이 어떻게 생활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즉 첫째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고난을 대처하는 데 있어서는 인내로서 감수하는 방도를 택할 수도 있겠고 또 적극적으로 대결 극복하는 길도 있을 것이다. 여기는 각자가 처한 환경과 사명에 따라서 슬기로운 판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길에서 자기 자신에 먼저 죽어야 하겠다.
오늘의 시대적 현상을 물질만능과 안일지상과 회의주의의 세 가지로 특징 지우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 회의주의는 주로 신에 대한 회의론으로서 여기서는 재론할 필요를 느끼지 않지만 물질만능사상과 안일지상주의의 두 가지는 우리 교회 안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이다. 원래 물질과 영성은 절대적으로 분리할 수는 없고 상대적으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배타적 고립 관계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맘몬(재물)은 똑같이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가치 기준을 정하고 있다. 즉 양자의 비중을 훨씬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영신을 중시하고 물질을 경시하는 데 근본적 가치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와 육적인 안일주의에 지나칠 정도로 세상 사람들이 흘러가는 풍조에 휩쓸려 크리스찬들도 무분별적으로 이에 동조하여 사상이나 행동에 있어서 비크리스찬들과 별로 구별될 것이 없는 현상에 이르고 있음을 개탄하는 소리가 높은 것 같다. 어째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의 물질주의에서 용감히 죽어야 하겠다. 말로만 청빈을 주장하거나 교회의 가난을 예찬하지 말고 실제로 자기가 물질적으로 가난하게 사는 데 만족하고 교회가 가난하게 운영되는 데 실망하지 말고「가난한 자는 진복자」라는 것을 문자 그대로 사는 어리석은 자가 되는 데 행복감을 느끼게 될 때에 진실로 물질주의에 죽는 자가 될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는 물질과 안일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우리는 언필칭 십자가를 진다는 말을 애용하면서도 고통을 피하고 안일을 취하는 데 급급하고 또 영신에는 느리고 물질에는 민감도가 높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비단 일반 신자들만이 아니고 일부 성직자 간에는 이러한 풍조에 오염될 염려가 없지 않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결국은 말로는 영신과 고통의 신비를 외우면서 행동으로는 물질의 노예와 안일의 화신이 되어가고 있는 이중인간을 스스로 형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질타하신 위선자와 바리사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오늘의 우리들을 두고 하신 말씀으로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원래 하느님 중심의 생활신조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타인 중심의 생활 자세가 우리 크리스찬의 특징이며 표지이고 특권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자들이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원죄적 방향으로 기울어져 감은 모든 것이 물질주의와 안일사상의 현대 사상에서 연유한다고 보기 때문에 오늘의 사순절을 맞이하는 이 마당에서 특히 그것들의 유혹에서 죽고 그것들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길을 찾아보고자 하는 바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