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고향 전주에는 유명한 성지인 치명자산이 있습니다. 그 산에는 한국교회사에 찬란히 빛나는 李 누갈다 동정부부의 묘소가 있어, 전국각지의 많은 성지순례자들과 전주의 신자들로 인하여 매일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나이 많은 할머니들 중에는 젊은 사람도 오르기가 쉽지않은 가파른 산길을 사십일 기도나 백일기도를 하기 위해 매일 오르는 분도 계십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정말 저의 신앙 생활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얼마후 각급 학교 입학 시험이 실시되는 시기가 다가오면 李 누갈다의 묘소를 찾는 어머니들이 부쩍 늘것입니다. 자식이 시험을 잘 치르도록 매일 그 험한 산길을 오르는 어머니들의 정성에는 그저 고개가 숙여질 따름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습니다. 자칫 미신적인 기복신앙으로 흐리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극소수의 예에 불과하겠지만 李 누갈다묘소의 풀을 베어다가 시험 당일날 아침 수험생에게 국을 끓여 마시게하는 어머니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전주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사실입니다.
물론 합격에 대한 염원이 간절하여 하느님께 직접 간청하고 그러고도 모자라 순교자를 통하여 다시 간구하는 것은 당연한 신앙심의 발로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성지순례가 아니라 점장이에게 가서 부적을 얻어 오듯 순교자 무덤의 풀을 베어다가, 어떤 신령한 효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결코 건전한 신앙심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경기도 어느 성지의 풀이 남편의 바람기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소문이 나서, 부녀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신앙심만 열렬하다면, 굳이 그런 비상식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 신심 깊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은 시험 전날 한마디 격려와 함께 엿이나 찰떡을 선물하는 등의 풍습과는 전연 별개의 문제로서, 세례식때 미신 행위를 끊어버리겠다고 맹세한 신자들의 참된 신앙생활이 어떠해야할지 한번 생각해 보게하는 문제인것 같습니다.
부디 이번 입시철에는, 수험생 자신은 최선을 다해 공부하여 시험에 임하고, 가족들은 하느님께 대한 참된 믿음과 수험생에 대한 사랑으로 시험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천주교 신자로서의 모습을 보였으면 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나서 바치는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서는 결코 외먼하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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