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너는 시인이니까-내가 죽거들랑 나를 위해서 시를 써 주어야 해!』수사님께서 떠나시던 날도 아무 경황없이 아침 첫 기차로 서울을 출발해서 수도원에 이르렀을 때는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사님의 영정 앞에서 말없이 누워계실 모습과 투병하실 때의 모습과 그리고 아주 아름다우셨던 모습들이 교차되면서 16년 전 만남과 그 이후의 모든 추억들이 물살을 일으키며 흐르는 강물의 소용돌이처럼 저의 가슴에와 흐느껴 울었습니다.
오늘은 수사님의 영명축일입니다. 일본으로 수술하러 떠나셨을 때만 빼고는 한 번도 축하드리는 일을 거른 적이 없었지요. 그러나 오늘은 그때하고도 전혀 다른 상황과 온 정성을 모두어 드릴 곳이 제게서 떠나 아주 아니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절감되는지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서로에게 소중한 몫의 자리를 지킬 때 우리는 진정으로 생활하는 기쁨을 함께 할 수가 있지요! 그러한 기쁨을 전할 곳이 자리를 비웠다는 것을…이렇게 느껴본 적은 전에 없었다는 것이 제 가슴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이에요.
곤라도 수사님!
고향이 같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을 주는 건인가도 헤아려본답니다. 저는 너무 어려서 피난 중(中)에 어머니 등에 매달려왔기에 전혀 무엇을 운운할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고향이 이북이라는 것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요! 그것은 저항할 수 없는 그 무엇의 동질의 감정을 나누어 물려받은 것이에요.
제가 영세를 한날 저녁에도 영세식 축하 파티를 우리 모두 기쁘게 나누었지요! 저는 오랜 날들이 지나고 있어도 그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부터 비롯된 저의 신앙생활은 저의 온 삶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주님의 새로운 안내가 서서히 저의 삶의 방향을 바꾸었고, 지금은 그분의 자녀 된 은총을 무엇이라고 표현 할 수는 없으나 감사와 기쁨을 가지고 생활하는 자신을 느낀답니다.
수사님!
해마다 4월이 오면 수유리에 진달래꽃이 피어나듯이 제게도 수사님의 영명축일은 살아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산야의 붉은 진달래가 피어나는 것은 붉은 마음의 따뜻함을 온 누리가 채우고 있는 듯싶습니다. 그리고 진달래의 이름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이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해마다 4월이 오며는 수사님의 영명축일도 진달래꽃이 피어나듯이 수사님을 기억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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