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바티깐」공의회는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교회의 모습을 변화시켜 왔다. 공의회가 폐막된지 20여년 밖에 되지 않았으나 공의회 이전과 이후 교회의 모습은 금석지감(今惜之感)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공의회는 전례적인 측면을 비롯 외형적인 변화도 컸으나 「쇄신과 적응」을 모토로 한 공의회 정신은 교회 구성원의 의식에 더 큰 변화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가운데 평신도는 「듣고 따르는 교회」 (ecclesia discens etoboediens) 라하여 수동성이 강조됐었으나 공의회를 통해 평신도의 능동적인 역할, 즉 참여의식과 주인의식이 크게 부각됐다. 이 별과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으나 사회속에 교회의 모습을 구현하는데 있어 평신도가 크게 기여할수 있었다. 공의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평신도는 교회(성지자)의 가르침에 순명하고, 각종 성사(聖事) 생활만 열심히하면 구원받을수 있다는 자기구령(自己救靈)에 집착하고 자족하는 경항이 강했다. ▼따라서 교회운영 전반에 걸쳐 평신도의 능동적인 참여의식의 결여로 인해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는 종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의식의 편린들은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사제의 부모가 아들 신부에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존대어를 쓰는 것을 당연시하다못해 영광스럽게까지 생각했으며, 사제의 공소방문시 사제가 먹다 남긴 음식에 은총 (?)이 가득한 것으로 생각, 쟁탈전을 벌였는가 하면, 칠순 노인들이 젊은 사제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든지하는 것 등등. ▼당시에는 지극히 당연시해왔던 이러한 현상들은 가히 현실괴리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같은 요소에는 상당한 역사적인 배경이 깔려있다는 점을 간과 해서는 안되며, 이에 대한 반작용에서 나오는 성직자 경시풍조는 더더욱 안될 말이다. 평신도의 교회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성직자와 평신도간의 갈등이 조금씩 표출되고 있다. 제20회 평신도의 날을 맞아 공의회정신에 따라 성직자와 평신도간 올바른 위상(位相) 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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