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안녕하세예. 그 동안 여러 곳에 연락해 보았지만 소식을 몰라 옷 벗은 줄 알았어예. 그런데 여전히 로만칼라를 하고 계시니 반갑네예』J자매가 사제관에 들어서면서 하는 말이다.
군종사목을 할 때 반주자로 봉사하던 그와 4년만의 만남이다. 지금 부산에 살고 있는데 내가 길동본당에 부임한 것을 신문에서 보고 찾아온 것이다.
『그 동안 자내님은 어떻게 지내셨습니까』하자 그는 소파에 앉자마자 세 시간동안이나 자기 이야기만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탁자위에 놓인 화분마저 넘어뜨려가면서.
그 자매가 떠난 후 사제관에는 막이 내린 무대같이 공허하기만 했다. 오랜만에 만난 터라 반갑고 서로가 나눌 이야기도 많았음직한데 세 시간동안 나눈 말은 오직 인사 한마디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는 상대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통행만 하니 나는 많은 인내심을 갖고 들어 주어야 만하는 고통과 함께 짐스러움을 느꼈다.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격이 급하다 한다.
성격 탓인지 몰라도 많은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화려하게 늘어놓다가 끝나 버리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된다. 연회석상에 참석 해보면 사람들이 흥이 오르면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참석자의 대부분은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옆 사람과 잡담하는 경우가 많아, 노래가 끝나면 듣지도 않은 주제에 박수는 요란하게 치는 풍경이 벌어진다.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이 난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공부를 10년 이상씩이나 해도 회화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는 듣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경기에서도 잘 볼 수 있듯이 수비가 강한 팀이 공격도 잘하며 그 경기를 승리로 이끈다.』그러기에 대화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은 무엇보다 듣는 자세라고 생각된다.
요즈음 시내에 외출하면 학생들 데모진압을 위해 다량의 최루탄 발사로 호흡이 곤란함을 느끼고, 눈물을 흘린적이 여러 번 있다. 상대방의 의견을 군화로 짓밟고 받아들일 줄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슬픈 마음이 든다. 아마도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면서 살아보기 보다는 명령과 복종만을 강요하는 사회에 몸담은 행위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닐까?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보면 위대한 면을 너무나 많이 발견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인간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느님 뜻에 순명했다는 것이다. 구세주의 탄생 사화를 보더라도…나 역시 듣는 자세가 많이 결여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음식이 아무리 많아도 배설물을 받아줄 화장실이 꼭 필요 하듯이. 우리는 나의 주장만을 피력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인내로이 들어주는 자세가 되어야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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