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론이나 말이 아니라 실제적인 행동, 이른바 Praxis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그렇게해서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투쟁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사회 변혁에 구체적으로 기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사실을 마르크스 주의를 통해 배운다. 그뿐 아니라 인간사회가 당연히 갖추어야할 모습에 대한 정확한 안목을 지닐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여 일하고, 서로를 위하고 걱정해주는 마음을 가지고 노동의 결과를 공정하게 나누는 사회야말로 인류가 지향해야할 이상적인 사회라는 관념을 선명하게 지닌다는 것이다.
일종의 「그리스도교 마르크스주의」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런식의 사상을 가진이들은 교회안에서 아직도 소수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또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른바 그리스도교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순진하고 공산주의의 실상을 전혀 모르는 공상가들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과연 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그들이 마르크스 주의를 과대평가하고 공산주의가 역사적으로 저지른 구체적인 잘못들을 전혀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가들에 의하면, 마르크스식 공산주의는 가혹한 종교박해, 심한 압제정치를 해왔고,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균형의 면에서 이룩하겠다고 약속한 것과는 달리 실제에 있어서는 그 방면에서도 이루어 놓은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 등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은 과오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5,해방신학 관계 두가지 훈령에 나타난 현 가톨릭 교회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관계
우리의 관심사인 마르크스 주의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관계가 현대에 와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곳이 남미 교회라 할 수 있다. 거기서 태동한 이른바 해방신학 운동이 모두 마르크스 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 중 일부가 여러가지 다른 정도로 마르크스 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따라서 그점이 로마교황청으로서는 가장 큰 문제로 보여지고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1984년 신앙교리성으로부터 발표된 「해방신학 일부 측면에 관한 훈령」 은 그 서론에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해방신학운동에 여러 형태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마르크스 주의에 대해 신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위해서 마련된 문헌인만큼, 현대 가톨릭 교회가 마르크스 주의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어떤 입자을 취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데에도 대단히 좋은 자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부터 이 훈령과 그 후속 문헌으로 1986년에 온 훈령, 「그리스도교적 자유와 해방」에 나타나는 몇가지 대표적인 주제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본 요약문에서는 부득이 가장 중심적인 문제의 하나라고 생각되는 주제 한가지만을 살펴 보기로 한다.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기로 하는 우선적 선택
(The Preferential’option for the poor)
1984년과 1986년에 신앙교리성으로 부터 나온 해방신학 관계 두 훈령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실 중의 하나는 이 표현과 그것이 뜻하는 입장이 남미교회라고하는 테두리를 벗어나 전세계 보편교회에 두루 통하는 일종의 정책으로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다. 이미 푸에블라 문헌에서도 이런 주장이 나타났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선호와 연대를 표현하는 분명하고 예언자적인 선택을 결정한 메델린의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들의 완전한 해방에 목표를 둔 선택인,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기로 하는 우선적 선택에 교회 전체가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확인한다.』 이 표현 속에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해왔듯이 자선사업 등을 통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슨 일인가를 해준다는 정도가 아니라, 참으로 그들을 위해 있으려면 교회 자체가 일체의 기득권을 버리고 스스로 가난하게 되어야 한다는 자각이 함축되어 있다. 잘 알려진 구티에레즈의 말을 들어보자. 『가난한 이들의 교회를 이야기하는 대신에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부동산, 주태과 부속건물, 우리의 생활양식 전체를 통해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해방신학, 성엽 역, 155쪽 참조)
그런데 「선택」을 말하는 이 표현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종교개혁자들이 들고나온 “신앙만으로 “(solafide)라는 슬로건 이후 교회역사상 가장 큰 물의와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평가한다. ※<해방신학 일부측면에 관한 훈령>의 주무부처인 신앙교리성 자체가 그 훈령의 공식요약으로 내놓은 문헌에 따르면, 문제의 훈령을 반포하게된 동기도 바로 이 표현에 관한 오해를 불식시키려는데에 있었다고 한다.
과연 가난한 이와 억업받는 이들의 편에 서기를 선택한 교회의 의지를 나타내는 이 표현을 두고 남미교회안에서 찬반양론이 예리하게 맞서왔다. 반대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편에서기로 한다면 자동적으로 부자들을 제외시키게 됨으로써 빈자와 부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할 자신의 보편적 사명을 포기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편드는 쪽으로 기울어진 선택은 교회가 마르크스 주의적 계급투쟁 이론을 사실상 받아들여 한쪽 계급의 투쟁에 가담한다는 의미라고 본다. 한마디로 이 표현과 그것이 뜻하는 정책은 마르크스 주의와 남미가톨릭의 사조를 교배(交配) 해서 만들어낸 가망없는 괴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찬성론자들의 견해는 전혀다르다. 그들에 의하면 이것이 마르크스사상보다는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우선적 관심과 사랑을 보이시는 하느님을 증거하는 성서에 더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반대론자들은 왜 그렇게까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그들의 주장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있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르크스의 사상중 선택의 필연성을 말하는 부분을 좀더 가까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대로 역사발전의 기본동력으로서의 계급투쟁을 일단 인정하고 나면 현단계의 사회에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라는 양대 진영만이 존재할뿐, 그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지대란 엄격히 말해서 존재할수 없다.
가자의 주관적 의식속에서도 자신이 그 양쪽중 어느편에도 속하지 않노라고 말하는 사람도 객관적으로 엄격히 분석해보면 둘 중 하나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중간층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 역시 사회변혁에 대해서 취하는 태도여하에 따라 별 수 없이 어느 한쪽에 귀속될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사람의 정신활동 일체가 어떻게해서 일정한 색깔을 띠게 되고 어느 한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가하는데 대한 마르크스 주의의 주장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제한다』는 유명한 말이다. 한 사람이 놓여있는 구체적환경 내지 삶의 방식이 그의 사고방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우리는 잘알고 있다. 하지만이를 극단적으로 확대하여 그것을 하나의 절대족 법칙으로 생각하는데에 마르크스 주의의 문제가 있다. 어쨌든 이 사상에 따르면, 각자는 무의식 중에라도 자기가 속한 진영의 이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머리가 돌아가게 되있기 때문에, 그들의 선성이나 양심의 여하에 관계없이, 계급이 다른 두사람간의 대화는 불가능하고, 따라서 그들 사이에는 투쟁만이 있을뿐이다. 예를들어 어떤 형태로든 자본가의 진영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 참으로 노동자들을 위하여 의미있는 말을 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논리를 교회와 가난한 이들 사이의 관계에 적용하면, 교회가 참으로 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일하고 발언하기 위해서는, 자본가 계급혹은 기득권자들의 진영을 뛰쳐나와 가난한 이들의 진영에로 옮겨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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