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 시작되면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의 행사를 준비하느라고 유치원이나 학교ㆍ본당 등에서 일하는 수녀들의 일과는 더욱 분주해져서 효심에 대한 묵상 한번 제대로 못하고 오히려 산만하게 지내는 것 같다. 카네이션 꽃을 준비하고, 예물을 장만하고, 노래와 춤들의 재롱부리기 연습을 시키는 등, 마치 먼 곳에서 오시는 손님맞이 잔치 준비나, 축일, 명절 등의 축제를 지내듯 하는 것을 볼 때 마다, 과연 어린이 사랑이나 부모님께 드리는 효심이 저런 축제로써 얼마나 키워지는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축제일」일수만 있을까?
어린이를 밝고 명랑하게 키우고, 어버이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축제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어린이날, 어버이 날을 웃고 기쁘게만 지낼 수 있는 날인가하는 것이다. 가족계획, 화학물질 오염에서 오는 갖가지 공해로 인해 다행히 장애자로 태어나지 않은 어린이들도 예측할 수 없는 갖가지 병의 위협을 받고 있는가 하면 날로 심해지는 사회의 각종 어두운 요소들은 어린이들로 하여금「정직한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는 식의「성공」개념을 갖게 만드는 현실에서 어린이 날을 축제의 날 같이만 지낼 수 있을까? 또한 제2차 세계대전, 6ㆍ25, 그리고 지금도 일선을 지키기 위해 젊은 아들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어버이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어버이들을 비롯하여. 땅을 팔아 등록금을 댄 자녀들이 정의를 외치다 대학에서 제적 당하고, 잡혀가 고문을 받고, 억울한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혀 형고를 치르게 된 어버이들, 공장에서 일하다 손발이 잘린 산재환자, 억울함을 호소하다 쫒겨나고, 잡혀가 매를 맞고, 갇히고 다시 취직할 길조차 막혀있는 젊은 근로자들의 어버이들에게 어버이날이 축제의 날일 수 있을까?
그분들의 가슴에 달릴 꽃은 무슨 색갈이면 어울릴 것인가?
◆가슴마다 다른 상처 담고
도시이주 현상과 핵가족제도의 물결에 밀려나 외로이 버려져 생을 마쳐야하는 노인들에게 어버이 날 꽂아드리는 카네이션 꽃송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말씀드릴까? 또한 아들과 딸을 잃고도 잃었다는 사실조차 숨겨야하는 처절한 울분을 참고 사는 광주사태 희생자들의 어버이 가슴에 꽂혀지는 카네이션 한 송이의 사연은 어떤 것일까?
한편 민주주의 이름으로 독재를 하다 국민에게 쫒겨난 정치가들의 가슴에 꽂혀지는 카네이션 꽃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부정축재, 고리대금, 온갖 폭력과 불법적 수단으로 일확천금의 꿈을 실현하고, 영화를 누리며, 농어민, 근로자들의 피와 땀의 열매를 사치스런 생활에 낭비하는 어버이들의 가슴에 꽂혀지는 카네이션 꽃의 마음은 또 어떤 것일까?
분명한 주관적 의사도 없으면서 밤낮없이 거리에 지켜섰다가 젊은 형제들에게 최루탄이나 쏘고, 돌팔매를 받아야하는 기동경찰들의 어버이의 가슴에 꽂혀지는「카네이션」꽃의 숨은 사연은 또 무엇일까?
그런가하면 사회와 학교에서 목격하는 온갖 불의한 처사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자신과 가족의 생의 위협을 무릅쓰고 양심선언을 하고 시국성명을 하고 나선 지성인들의 가슴에 달아지는「카네이션」한 송이는 무슨 색깔의 꽃이고 싶을까?
◆한 송이 꽃의 끝없는 사연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차례로 펼쳐지는 5월에 사랑, 진리, 정의, 평화의 소망마저 깊은 상처를 입은 채 한 송이「카네이션」속에 숨어 신음하는가?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고 죄와 죽음 쪽을 택했을 때 조물들마저 제구실을 못하고 신음하게 되었다고 하신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의 말씀이 5월의 카네이션 한 송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떠들 줄만 알고 실천할 줄 모르는 인간들의 행실이 역겨워도 시원히 뱉어 풀어버릴 수 없는 한 송이 꽃의 끝없는 사연들을 풀어주실 수 있는 주님의 어머님께 5월을 봉헌한 것은 그때문인가보다. 십자가형을 받으신 사형수의 어머니 성모님께, 5월에 달아드리는 카네이션 꽃송이들의 사연들은『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한 시메온의 예언을 받은 날부터 오늘까지 이어지고 한국의 5월의 성모님께는 더욱 냉혹한 현실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한 아름 아픔 다발로 엮어
한국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가 5월을 함께 기도하는 달로 정하고 전국에서 일제히 성모님께 봉헌하는 효심의 기도와 새 삶에의 다짐을 하는 것은 온갖 상처를 가슴에 지니고 사는 어머니들의 아픔을 한 다발 꽃으로 묶어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희생제단에 봉헌코자하는 뜻에서이다.
4.000명 한국수녀들이 이 꽃다발 속에 기도와 희생을 묶어 함께 심는 소망은「평화」이다. 이제 더는 누구 한사람도 억울한 피를 흘리거나 희생되는 일이 없이 모든 사람이 바라는 민주화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한결같은 마음의 표현이다.
우리 작은 마음들이 모인 곳에 성모님께서 함께 계셔 주시면 부활하신 예수님 오시고, 성령께서 오시어「평화」를 약속대로 주실 것을 믿는다.
이 믿음을 모아서 겨자씨 만하게 키우는 기도모임이 이 5월의 영원한 향기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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