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85년 5월 5일자 6면에 보도된 바 있는 하반신 없는 목동철거민 이응옥씨(47ㆍ시몬)는 지난 겨울의 많은 밤들을 뜬눈으로 지새우곤 했다.
50고개를 앞두고 난생 처음 내 집을 갖게 됐다는 벅찬 기쁨과 기억조차 하기 싫은 과거의 아픔이 영화의 오버랩 장면처럼 자꾸만 머리속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76년 D제강에 근무하던 시절, 보거스 병에 걸려 하반신을 잘라내야 했고 곧이어 부인마저도 가출해버렸다. 생계를 위해 코흘리개 아들과 함께 볼펜행상에 나섰으나 그나마도 힘들어 아들을 고아원에 보내야했다.
슬픔을 느낄 사이도 없이 한꺼번에 몰아닥친 운명의 사슬 앞에 조용히 굴복해야 했다. 장갑배달을 위해 고물 훨체어로 언덕길을 오르다 휠체어가 뒤집혀 길바닥에 떨어졌지만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아 눈물을 삼키며 언덕을 거어 내려 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살려고 노력했다. 무허가 판자집이 철거당해 어린 딸과 길거리에 나앉았을 때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본보 보도이후 이웃의 따뜻한 손길을 알았으며 교회의 포근함도 느꼈다. 영등포에 단칸 전세방도 얻을 수 있었고 예비자 교리반에도 나갈 수 있었기에 그렇게 외롭지만은 않았다.
작년 10월 목동성당에서 시몬을 세례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맛보면서 죽을 때까지 꿈도 꾸지 못할 것으로 알았던 내 집 마련의 희망도 갖게 됐다.
경기도 소래군 복음자리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면서 봄이면 이뤄질 내 집 마련의 꿈에 1월의 엄동설한도 즐거이 맞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희망도 5월 20일로 예정된 입주일이 가까워오면서 차츰 불안으로 변해갔다. 입주금도 70만원이 모자라고 가까스로 입주해도 취득세 도배비 등을 마련할 재간이 없고 매달 10만원이 넘는 원리 상환금은 또 어떻게…
이제 겨울의 천막 속에서 기쁨과 회상의 엇갈림으로 많은 밤을 지새웠던 이 씨는 입주를 앞두고 다시금 번민에 쌓이면서 과연 내 집 마련은 꿈이며 철거민은 결국 다른 형태의 철거민으로 남아야 하는가를 수없이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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