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뭔가 변화의 시대가 오고있는것 같다. 허나 아직은 혼돈의 늪에 빠져 있는듯하여 우리의 갈증을 애타게 한다.
정말 우리에게도 위장된 언어로서의「보통사람」이 아닌 상식이 통하는 진정한 의미의 보통 사람의 시대가 올 것인가 하고-.
바야흐로 정치의 세계에서는「민주화」란 명제를 내걸고 변화의 몸짓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고 험하여 모두가 근심스런 모습이다.
하여튼 우리사회는 놀랄만한 변화를 가져왔다. 문자해독율은 미국보다 앞서 무려 98%에 달한다. 수출무역량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그토록 걱정하던 외채도 상환단계로 접어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온통 최루탄으로 뿌옇게 거리를 회색연기로 덮었던 강경일변도의 경직된 정치도 국민의 민주열기 앞에 숨통을 트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또 그토록 타부시해오던 노사문제도 이젠 드러내놓고 타협에 의하여 해결될 여지를 열어놓았다.
이렇듯 사회가 점진적으로 진보의 변화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이 마당에 우리 교회도 그 자신의 문제점을 찾아 새로운 변화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본다.
이미 2년전에 우리는 천주교 2백년 개신교 1백년의 선교위업을 기린바 있다. 그때 여의도 광장에서 천주교는 많은 성인을 갖게 되었고 물경 1백만 신도가 운집하는 거대한 교세를 과시한바 있다.
천주교나 개신교가 이 땅에서 놀랄만한 양적 팽창을 가져온 것은 매우 경사스런 일이다. 허나 이런 엄청난 외적성장에 비해 과연 기독교 정신이 이땅에 제대로 잘 구현되고 있느냐는 점을 냉정하게 분석할때 부끄러운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물론 교회가 갖는 긍정적 역활을 과소평가해선 안되지만 이렇게 수많은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늘어서 있었지만 이땅엔 여전히 물신주의(物神主義)와 권력지상주의가 만연되어 있고 교회마저도 이에 오염되어 있지않나하는 염려를 떨칠 수가 없다.
비근한 예로 오늘의 교회건물이 너무 웅장하고 사치스러워져 간다는 점이 그것이다.
특히 개신교의 경우에는 교회당 건물 하나에 수십억원의 엄청난 비용을 들여 화려하게 짓는 예가 적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천주교 성당건물도 너무 사치스럽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 2백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교구에 따라서는 무리하게 많은 본당을 건립하여 수많은 신도들이 신앙의 시험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교회도 하나의 조직이고 보면 신도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성당도 증가되어야 하겠지만 일반 회사의 문어발식 양적 성장에 비슷한 양상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물신주의를 배격해야 할 교회가 물신주의에 젖어가서는 안되며 이점은 평신도 조직에서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평신도 조직의 장(長)을 선출하는 것이 거의 임명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나마 그것도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능력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있지않나하는 비판적인 인식에 귀를 기울이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력이 능률이란 측면에서 효율적이고 따라서 교회운영에도 긍정적이라는 장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교회는 교회다워야하고 뭔가 세속단체와는 달라야 한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신앙적인 차원에서 비록 경제력이나 사회적 신분이 없더라도 신앙적인 정열과 실천력이있다면 신앙공동체의 소중한 도구로 쓰여져야 할 것이다.
또 천편일율적인 임명제도 마땅히 개선되어야 한다. 평협위원은 임명직으로 하더라도 적어도 일부 주요간부만이라도 평협위원이 선출하는 민주적인 방식이 도입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직의 민주성은 결과적으로 평신도의 자율성과 창의성에 기여하는 한편 신앙공동체의 일체감 형성과 봉사의지를 앙양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또 한가지 주목해야할 점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와 함께 하여야한다는 점이다.
부당한 노사관계로 고통을 겪고있는 근로자나 경제적으로 극빈한 사람 또 정치적인 이유로 부당하게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
근래에 와서 천주교의 교세가 크게 확장된 것은 그동안 우리의 최고목자이신 김수환 추기경님을 위시한 성직자와 평신도가 이땅의 진정한 민주화와 인간화를 위해 크게 헌신해온 것이 그중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되고 있다.
그리하여 종교를 믿지않는 사람들마저도 필자에게 천주교의 민주화 소명의식에 감동된 나머지 앞으로 종교를 택한다면 천주교를 믿겠다는 식의 인사만을 여기저기서 듣고 흐뭇해 한적이 많았다.
민주화와 인간화에 대한 교회의 노력을 비신앙적이라고 보는 견해가 없지않다. 흔히 로마서 13장을 인용하여 교회는 현세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애야 한다는 것이다.
허나 교회가 맹목적으로 현세의 권위에 복종할수 없다. 현세질서가 기독교정신과 명백히 반할때 교회는 침묵해선 안된다.
요즘 민주화라고 말은 하고있지만 이제 겨우 민주화의 문턱에 와있을 따름이다. 어쨌던 우리는 이날이 오기를 얼마나 염원해왔던가. 얼마나 엄청난 희생과 인고의 세월을 눈물로 보내야 했던가.
이 서러운 백성으로 하여금 더이상 눈물흘리지 않도록 교회는 민주화와 인간화의 감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허나 아직도 교회일각에서 이런 근본문제에 눈을 돌리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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