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 1학년 막 입학한 어느 늦은 봄날이었습니다.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유난히 장난이 심하던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중형트럭에 치어서 교통사고를 당하였습니다.
병원입원 후 나는 다리를 절단해야하는 치명적인 중상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다리병신이 되다니…
그러나 나는 이 슬픔을 참고 이기기로 하였습니다. 아빠가 갖다 주신 라디오는 나의 유일한 친구였고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라디오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그토록 사랑스럽고 따스하신 엄마ㆍ아빠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있는 힘껏 소리쳐보았습니다. 그러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엄마가 의사를 데리고 왔으나 나의 청력은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약물중독이랍니다. 나는 도리 없이 또 하나의 귀머거리병신이 된 것입니다.
엄마와 아빠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계셨지만 이제는 엄마 아빠도 싫어졌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나를 오랫동안 좌절하게 놔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다시 이성을 되찾았고 치료에 응해야했습니다. 몇 개월 동안 치료받은 끝에 다리의 상처는 어느 정도 아물었고 나는 목발을 짚고 걸음마를 다시 배웠습니다. 그러나 다리의 상처는 귀머거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해 학교 2학년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친구들과 선생님의 눈치만 보아야 했습니다.
어느덧 6학년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정상인 중학교는 힘이 들거라고 하면서 고민들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밖에 나가셨던 엄마는 아주 기쁘고 희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들어오시더니 나보고 어디엔가 가자고 하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찾아간 곳은 성심농아학교였습니다.
웬지 친근감이 갔습니다. 면접을 하는 어느 여 선생님이『너 이 학교에 다니고 싶니』하고 필답으로 물어보셨습니다. 나는『예』하고 대답했습니다.
이곳 선생님은 귀머거리에 맞게 공부를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재미도 있었고 오후에는 기술도 배웠습니다. 내가 배우는 것은 양복기술이었습니다.
해보았지만 몇 번이나 틀렸습니다. 그래도 나는 절망하지 않고 옥상에 두 팔을 벌리고 나를 안아주실 듯이 서계시는 인자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배웠습니다. 또한 그전에는 엄두도 못내는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습니다. 탁구도하였습니다. 달리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땐 나 자신이 불구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언제나 야속스럽고 원망스럽게 여겼던 하느님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교리공부를 열심히 하여서 세례와 견진도 받았습니다. 이제는 슬픈 것도 절망할 것도 없습니다. 열심히 배워서 나보다 더 불행을 겪는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어주겠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