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유없이 종교와 美와의 관계를 타성에 젖어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영화와 T·V드라마 또 문학작품에서 美的인 설계에 의한 성당건물이 자주 등장하고, 아름다운 여배우가 미사보를 쓰고 기도하는 모습, 사랑하는 남녀의 혼배성사 장면, 또 미모의 배우가 화장까지하고 수녀복을 입은 모습 등,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장면까지도 우리는 시각의 즐거움으로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수녀역의 옷차림에 묵주를 목에 걸고 수도복이 어딘가 이상하기까지 이르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것은 예술이 주는 효과를 떠나서 무지의 문제로까지 번지기 때문이다. 사실 수녀님들은 고행에까지 이르는 수도생활의 어려움이 있고 특수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목면의 검소한 옷과 맨발의 샌들을 신은, 오히려 아름답지않은 외모때문에 내부의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는 신분이 있는가. 데레사 수녀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우리가 본 아름다움의 참모습이 오히려 주름지고 거칠어진 손과 낡은 수도복과 가식없는 웃음이 아니었는가. 물론 아름다움은 좋은 것이다. 사실 성당이 아름다워서, 수녀님의 모습에 끌려서 성당에 오게 되었다면 효과적인 전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군더더기로 붙은 흥미와 오락적인 역할로 종교의 모습이 남발된다면, 종교의 참의미를 모르는 비신도들이 영원히 외양에 치중한 형식적인 종교로서 오해를 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될 수 있는한, 묵주를 목걸이처럼 목에 건 수녀님, 화장한 수녀님 등 무지한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되겠다.
속담에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못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그러한데서 본다. 하나의 위대한 예술작품에는 작가의 일생의 노고가 들어있는 것처럼 하나의 성숙된 신앙을 갖기 위해서 각고의 내면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 노력은 순간적일 수 없고 오랜 기간의 단련을 요구하기 때문에 외면이 주는 우리들의 맹점은 우스움을 자아낼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올바르게 신앙을 이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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