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는 올해 6살 입니다. 그래서 아직 학교에 가려면 일년이나 더 있어야 합니다. 옆집 하얀이는 보라 친구지만 일년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올해 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보라는 하얀이가 가방을 메고 아침이면 학교를 가는 것이 몹시 부러웠습니다.
오늘도 가방을 메고 학교를 가는 하얀이를 보자 보라는 심술이 났습니다.
『엄마! 나 가방 사줘!』
『아니 또 가방 타령이냐?』
『나도 가방메고 학교에 가고 싶단 말이야』
『원, 애두 내년에 학교엘 가면 어련히 사줄까봐 그러니?』
『싫어, 나 지금 사줘!』
『내년에 학교가면 사줄께』
『싫어!』
보라는 심술이 나서 엄마에게 가방을 사달라고 졸랐지만 엄마는 학교도 안 가는데 무슨 가방이냐면서 보라를 달랬습니다.
비록 학교를 못가지만 보라는 가방이라도 메고 싶었습니다.
『엄마, 그럼 하얀이 가방 하루만 빌려달라고해, 응』
『뭐라고? 가방을 빌려달라고?』
『응! 하루만』
『그럼 하얀이는 학교엘 어떻게 하고?』
『가방이라도 메고 싶단 말이야』
『글쎄, 내년에 사준다고 그랬잖니』
『싫어-앙!』
보라는 그만 울음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보라가 우는 것을 보자 보라 엄마는 속상한듯 밭으로 일하러 나가고 말았습니다.
『앙! 앙!』
보라는 울다 그만 마루 끝에 엎드려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얼마나 가방을 가지고 싶었으면 보라는 가방을 메고 학교엘 가는 꿈을 꾸기까지 하였습니다.
얼마쯤 낮잠을 잤을까? 보라의 귀에 잠결인듯 꿈결인듯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보, 내일 보라 이모가 온다는데 고추에 약이 올랐으면 어떻게 하오』
『정말 내일 언니가 오신다고 했죠』
『보라 이모는 고추는 좋아하시지만 매운 것은 못 먹잖소』
『허긴 그래요. 그런데 벌써 고추가 약이 올랐을라구요』
『벌써가 뭐요』
『그래도 약 오를라면 한 이틀쯤은 더 걸려야 할거예요』
『그랬으면 좋으련만…』
보라는 엎드려 자는척하면서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고추가 약이 오르면 매운 고추가 된다는 것이 아무래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후 보라는 혼자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좋은 생각을 해냈습니다. 고추를 약올려서 맵게 하면 부천서 오시는 이모님을 골려 줄 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 히히…』
보라는 자기도 모르게 그만 소리를 내어 웃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보라 엄마는 자는 보라에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습니다.
『아, 글쎄 보라가 가방을 사달라고 또 조르잖겠어요』
『가방을?』
『예, 그래 내년에 사준다고 했더니 울다 지쳐 그만 잠이 들었나봐요.』
『잠든 녀석이 웃기는…』
『아마 잠꼬대를 하나봐요』
보라는 계속 자는척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내일 고추를 약올릴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튿날 보라는 일찍 일어났습니다. 엄마 아빠보다 먼저 일어나 산모퉁이에 있는 고추밭으로 달려갔습니다.
『헉! 헉!』
보라는 너무 빨리뛰는 바람에 숨이 막혔습니다. 고무신도 자꾸 벗겨졌습니다.
『헉! 헉! 이제 다왔구나』
고추밭까지 단숨에 달려온 보라는 숨도 차고 힘도 빠져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고추밭의 고추들을 노려보았습니다.
『야 고추야, 약이 오르면 니가 매워진다면서?』
보라는 고추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고추야, 약 좀 올라봐라』
보라는 고추를 향해 소리로 치며 약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고추는 바보! 병신! 똥개!』
『용용 죽겠지. 약올라 죽겠지!』
『애롱! 애롱!』
보라는 고추를 향해 혓바닥을 내밀기도 하고 손가락을 뺨에 대고 눈을 크게 떴다 감았다. 정말 누가보면 정신나간 사람처럼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때 저쪽에서 하얀이 아버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보라는 깜짝놀라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보라야, 너 여기서 뭘하니? 엄마가 널 찾더구나. 빨리가봐라』
『에… 아…저씨』
보라는 하얀이 아빠 말씀에 급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보라야 너 아침부터 어딜 갔다오니?』
『엄마,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저 밖에 좀 나갔다 왔어요』
『오늘 부천 사는 이모님이 오신단다. 그러니 너도 엄마를 따라 좀 도와줘야겠다』
『…예, 엄마』
다른 때 같으면 이모가 오신다면 좋아했던 보라가 오늘따라 시무룩한 표정을 짖자 보라 엄마는 이상했습니다.
『얘 보라야, 너 무슨일 있었니?』
『아니예요 엄마』
보라는 시치미를 떼고 있었지만 웬지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그날 오후 보라 이모는 한아름의 선물 꾸러미를 안고 보라네 집에 왔습니다.
『보라야 그동안 잘 있었니?』
『예, 이모님』
『보라도 그동안 많이 컸구나. 내년이면 학교엘 가겠구나』
『이모가 그걸 어떻게…』
『응, 지난번 엄마하고 전화를 했는데 니가 날마다 가방사달라고 조른다면서? 그래서 알았지』
『예…』
그날 저녁, 보라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이모는 저녁상을 가운데 놓거 저녁밥을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아 참, 저녁먹기전에 내가 보라한테 줄 선물이 있는데…』
하시며 보라 이모는 커다란 뭉치를 보라에게 주었읍니다. 궁금한 보라는 고맙다고 인사할 틈도 없이 선물을 풀어 보았습니다. 순간, 보라는 너무 놀랐습니다.
그 속엔 생각지도 않은 예쁜 가방이 들어있었읍니다.
『아! 가방이?』
『왜 이 가방이 마음에 안드니? 보라야』
『……』
보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가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이모님한테 고맙다고 인사하고 저녁밥을 먹자』
보라엄마도 뜻밖의 가방에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아빠도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라는 울상이 되어 이모를 쳐다보았습니다.
『왜 그러니 보라야?』
『저 고추 잡수지마세요』
보라는 어제 오후 엄마, 아빠에게 들은 이야기며 아침에 고추밭에 갔다온 이야기를 모두 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온 집안 식구들은 집안이 떠나갈듯 웃었습니다.
『하! 하! 하!』
『호! 호! 호!』
보라는 어리둥절 했읍니다. 고추를 맵게해서 혼날줄 알았는데 정말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보라야 정말 오늘따라 고추가 맵구나.』
보라 이모는 고추를 한입 깨물어 잡수시며 말했습니다.
『이모 매우면 잡수시지마세요』
『아니다. 오늘은 매운 고추 좀 먹어보련다. 보라 덕분에…』
이때 보라엄마는 보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고추가 약이 오르면 맵다는 것에 대하여 자세히 말해주었습니다.
엄마의 말을 들은 보라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리곤 어쩔줄을 몰라 밥을 먹다 말고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읍니다. 밤하늘엔 어느세 별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개구리 우는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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